[사설] 언론탄압에 분연히 맞선다-본사 洪사장 구속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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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계속되는 국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사장이 구속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우리로서는 참담하고, 한편으로 독자와 국민께 송구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당국이 비록 중앙일보와는 무관한 개인탈세 혐의라고는 하지만 洪사장이 현직 중앙일보 발행인이고, 세금문제로 포장된 사태의 뒤쪽에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특별한 의도' 가 짙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힐 필요를 느낀다.

탈세 혐의는 앞으로 법정에서 위법 여부가 밝혀질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洪사장이 책임질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현직 언론사 발행인이 구속되는 한국 언론사상 드문 상황에 그동안 자제했던 말들을 더 이상 아끼기 힘든 분노를 느낀다.

먼저 이번 사태를 객관적으로 따져보자. 정부는 이번 사태를 언론사와 무관한 개인비리에 대한 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라고 했다가 나중에 보광의 대주주일 뿐 경영에 직접 관련이 없는 洪사장 개인으로 표적을 좁혀 저인망식으로 위법 혐의를 훑어간 과정이나, 중앙일보와 현 정권의 불편했던 관계를 보면 진짜 의도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중앙일보 죽이기' 의 분명한 의도를 알 수 있다. 또 구속이라는 사법처리 방식도 그렇다. 이미 출국이 금지돼 있고 관련 서류들이 모두 압수된 마당에 구속까지 한 것을 보면 예정된 각본에 따른 강요된 결론이라는 느낌이다. 불구속 수사 원칙을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국세청이 1백33억원이라던 탈세액이 검찰 수사에서는 23억원으로 줄어들고, 탈세에 동원된 차명계좌가 1천71개라고까지 부풀렸던 것이 검찰 수사에서는 불과 9개라고 발표됐다.

또 신분으로 보아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는 피의자다. 그럼에도 현직 언론사 발행인을 구속한 것은 본때를 보이겠다는 '괘씸죄' 적 처리방식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언론탄압의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는 생각이다.

위법혐의를 받고 있는 내용도 우리나라 기업에서 오래 관행화한 것이 대부분이라 하여 우리는 눈감아줘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특정인에게, 유독 중앙일보 발행인에게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샅샅이 뒤져 처벌하려는 것은 곧 표적사정이요, 정치적 의도가 개재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정치권력이 눈엣가시 같은 인물을 상대로 이런 이유를 내세워 저런 제재를 가하는 사례를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부터 숱하게 보아왔다.

우리는 洪사장도 같은 경우라고 본다. 이미 지적했듯이 보광 세무조사가 보광이 아닌 중앙일보 발행인인 洪사장에게 초점이 맞춰졌고 그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과대포장되는 등 관례와는 다른 점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보아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목적은 언론 길들이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만일 洪사장이 중앙일보 발행인이 아니었다면 보광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국제언론인협회(IPI)의 항의서한이나, 이번 수사에 중앙일보에 대한 '감정' 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는 세계신문협회(WAN)의 항의서한은 洪사장 사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중앙일보 사태' 임을 해외에서까지도 공감하고 있다는 생생한 사례다.

洪사장 문제의 처리를 놓고 일각에서는 언론개혁의 출발이니 하는 주장도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왜 중앙일보인가.

중앙일보가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특정 후보에게 편향적이었다는 지적이 있었고, 새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그후 중앙일보에 대한 응어리를 숨기지 않아 왔다.

언론개혁이라면 섹션체제 도입.가로쓰기.전문기자 확보.독립언론선언 등으로 다른 어느 신문보다 중앙일보가 앞장서 왔다.

그러한 중앙일보를 손보자는 것이 언론개혁인가. 정권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언론사 발행인을 언론사도 아닌 개인의 탈세를 이유로 구속한 것은 편협한 정권이기주의요,치졸한 정치보복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우리는 현 정권이 가해온 여러 형태의 압력을 인내로 견뎌왔다. 각종 보도에 대한 간섭과 인사개입 시도 등의 강도는 민주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였다.

우리는 가능하면 그같은 정권의 간섭을 내부적으로 소화하려고 노력했고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그 속셈을 뻔히 들여다보면서도 우리의 입장을 표명하는 데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현 정권이 불순한 목적으로 칼을 들이댄 이상 우리도 할 말은 해야겠다. 그것이 국민과 독자에 대한 의무요, 한국 언론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책무일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무너지면 모든 가치가 온전할 수 없다. 洪사장 사건, 아니 중앙일보 사태는 한국의 언론자유가 아직도 완전치 못함을 증명하고 있다. 민주주의 구현을 강조하는 국민의 정부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국가적 불행이다.

우리는 중앙일보의 생존을 위해, 한국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갈 것이다. 이 기회에 독립언론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어떠한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언론 본연의 길을 갈 것이다.

언론행위와 무관한 개인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사장의 구속을 두고 우리가 왜 언론탄압을 말하는지, 독자와 국민의 이해를 재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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