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정감사 제대로 하자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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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9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는 두 가지 큰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15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이자 16대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우선 걱정이 앞선다.

여야당이 서로 내년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구태의연한 정치 공방을 심하게 벌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국회의원 개개인도 선거를 의식해서 또는 국감스타가 되려는 욕심에서 이것저것 큰소리로 떠들어 언론의 관심을 끌려고 할지 모른다.

또 하나는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와 새 천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국회의 역할과 위상을 새로이 정립하는 중요한 기회라는 점이다. 우리는 개발독재 시대에는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3권분립이라는 헌법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해 본 일이 없이 그저 행정부의 독주와 낭비에 익숙해져 있다.

이번 15대 국회도 정치싸움으로 허송세월하다가 이제 몇달 안되면 끝나게 돼있다.

이번 국감이나마 제대로 해서 2000년대의 새 국회로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몇가지 주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여야간의 정쟁은 그만두고 행정부의 견제와 감시라는 국정감사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여야 국회의원끼리 언쟁을 벌이거나 사소한 절차 문제로 시간을 끄는 것 등은 꼴불견일 뿐 아니라 국감제도의 의의를 망각하는 일이다.

의원은 적어도 국정감사장에서는 소속 정당의 대표이기에 앞서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당이라고 무조건 행정부를 감싸거나, 또 야당이라고 폭로 위주로 정부를 공격만 해서는 국민의 불신과 지탄을 받기 십상이다.

둘째, 국감의 진행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마다 편의상 의원끼리 차례로 돌아가면서 말하게 하다보니 중복질문이 많고 자칫하면 백화점식의 나열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원 개인으로서는 모든 문제를 다 다루고 싶은 유혹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러다 보면 20일 동안에 그저 수박 겉핥기 식의 국감으로 끝나기 쉽다.

따라서 사전에 간사들이 협의해서라도 의원끼리 주제를 나눠 맡아 심층질문을 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좋다. 또 모든 기관에 똑같은 시간을 배정할 것이 아니라 의혹이 있거나 문제가 크다고 판단되는 기관, 또는 사안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집중적으로 감사를 벌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셋째, 의원 개개인의 성실한 자세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한 후에 따질 것을 따져야 하며, 또 총론보다는 각론으로 들어가 심도 있는 질문과 답변을 교환하는 것이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또 국정의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이미 다른 의원이 질문한 내용을 다시 질문하거나 기껏 질문해놓고 막상 답변할 때는 자리를 비우는 일 등은 삼가야 할 것이다.

넷째, 감사를 받는 기관들도 각성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지난 1년간 과연 원래 계획했던 대로 예산과 정책을 잘 집행했는지 스스로 반성하면서 의원들의 문제제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사실을 은폐하거나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으로 본질을 회피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다섯째, 의원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들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갖고 훌륭한 국회의원들의 역할을 독려하고 자극하는 임무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그저 출석률이나 발언시간 등 형식적인 사안보다는 과연 국회의원들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충실하게 대안을 제시하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정치적 쟁점이 많은 해였다. 자칫하면 예년보다 더 시시하고 시끄럽고 내실 없는 국감으로 끝나버릴 염려와 불안이 있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심기일전해 행정부의 잘못과 낭비를 시정하는 '국감다운 국감' 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기대하고 희망해 본다.

이번 국감은 또 문제 있는 의원을 가려내 다음 국회에서 퇴출시키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내년에는 21세기에 맞는 '국회다운 국회' 가 출범하기를 기원하고 싶다.

이종률 <前국회사무총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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