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문단 격찬 '제스처 인생' 작가 이창래씨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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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달 초 출간된 두번째 장편 '제스처 인생' 으로 미국문학계에서 격찬을 받고 있는 한국계 소설가 이창래 (34.뉴욕주 헌터칼리지 문예창작과교수) 씨를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지역학을 공부중인 문학평론가 이영준 (41.전 민음사 주간) 씨가 인터뷰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간 이창래씨는 예일대 졸업 후 월스트리트에서 자산분석가로 일하다 고교때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작가로 변신, 95년 첫장편 '네이티브 스피커' 로 '헤밍웨이 - 펜 상' 등 5개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미국문학계의 무서운 신예로 떠올랐다.

주인공 '하타' 의 다중적 삶을 그린 신작 '제스처 인생' 은 뉴욕타임즈에 세 차례나 기사가 실린 데 이어 각종 서평지에 격찬이 이어지고 있다.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 첫머리에서 작가는 이같은 호평에 대해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면서 "나쁜 평에 지나치게 기분 나빠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라고 말했다.

-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루게 된 동기는?

"몇 년 전 어딜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읽은 학술논문을 통해 처음으로 종군위안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갔다. 그때 위안부문제에 관해 써보기로 처음 마음을 먹었다. 그 후 한국에 가서 생존자들과 인터뷰도 하고, 자료조사도 한 뒤에 종군위안부를 화자로 거의 완성단계까지 써나갔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분들 증언의 살아있는 힘을 내 소설로 감당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접근한 것이 종군위안부 문제를 소설의 한 부분으로 소화한 이번 작품이다. "

- 드라마틱한 사연이다. 그 작업 결과에 만족하는가?

"글쎄.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이 배웠고 전체적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한 번 다른 각도로 접근해보고 싶다. "

- 이번 작품은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미국 언론은 주로 전작 '네이티브 스피커' 의 연장선상에서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자리잡는 과정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사람인 내겐 종군위안부 문제가 중심 주제로 보였다. 추측컨대 일본독자라면 일본장교로서의 정신적 내상을 삼중인격으로 견디고 있는 주인공 하타의 행로에 관심이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다중적 구성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가?

"나는 한 인간의 삶의 여정을 진실하게 그리려고 했을 뿐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아주 많은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그 사내의 삶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전부는 아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위안부문제에, 미국 사람들은 미국생활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읽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

- 주인공 하타의 개인사는 한국의 동년배들과 많이 닮았다. 일제시대와 6.25, 극심한 생활고를 헤쳐나온 한국의 전쟁체험세대 중 많은 이들이 하타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좌절을 겪곤 한다. 그런 고생담을 달가와하지 않는 젊은 세대로부터 이해받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하지만 미리부터 그런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다. "

- 이 소설에서 내게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위안부 K ( 'Kkutaeh' 라고 표기된 이 이름은 곧 '끝애 (끄태)' .마치 '말순이' 같은 의미의 한국 이름이다)가 "헬프 미, 오빠 (oppah) , 헬프 미" 라고 외치는 구절이었다.

영어문장 틈새에 끼어 외치는 '오빠' 를 읽는 순간 머리털이 쭈삣 섰다.

의미가 아니라 소리가 나의 몸과 혼을 부른다고나 할까. 이런 장면은 한국어.영어를 동시에 아는 교포들에게는 대단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쓰면서는 '오빠' 이외에 달리 표기할 방법이 없었다. 영어로 어떻게든 설명해보려고 무지 노력했지만 남은 건 좌절감 뿐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오빠' 라고 할 때의 그 음조와 느낌, 그 맥락을 느낄 것이다. 거꾸로 한국어로 이 소설이 번역될 때 "살려 줘, 오빠, 살려 줘" 라고 표기된다면 당신이 영어본에서 느낀 것과는 또 달라질 것이다. 번역이 좌절하는 순간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

- 한국의 일부 독자들은 주인공 하타가 자신의 한국 이름이나 자신의 뿌리로서 한국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게 못마땅할 지도 모른다. 소설 말미에서 하타는 그 동안의 정신적 족쇄에서 해방돼 여행을 떠날 계획을 하고 있는데, 한국을 방문할 것 같지는 않다. 작가로서 그런 주인공을 어떻게 변명해줄텐가?

"내 주인공은 일본도 가지 않을 것이다 (웃음) .그는 아마 어디도 갈 수 없을 것이고, 한국.일본.미국.참전지였던 미얀마 어디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고향을 잃은 사람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슬픈 이야기다. "

- 인물의 심리묘사에서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 당신의 문장에서는 현재형 표현이 곧잘 눈에 띈다.

"당신도 알겠지만 현재 미국 소설들은 대개 현재형 문장을 많이 쓴다. 내가 특히 현재형 문장을 좋아하는 것은 즉각성 때문이다.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과거형 시제보다, 직접 무릎을 맞대고 상대의 얼굴에다 말하는 효과가 있다고나 할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

- 영화의 영향처럼 보이는 그같은 현재형 문장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도 종종 쓰곤 하는데, 인식의 객관성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아무리 과거형 문장으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해도 주관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본다. 일인칭에다 현재형 문장을 쓰더라도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면 된다. 한국 작가도 현재형 문장을 많이 쓴다니 반갑다. "

- 이제 미국사회는 당신을 미국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이자,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문화적 통로로 여기고 있는 듯한데. (IMF직후 한국의 금모으기 운동에 대한 그의 글이 뉴욕타임즈에 실리기도 했다. )

"나는 사실 문학적으로 미국 작가이고, 한국 문화에 대한 나의 역할은 한계가 뚜렷하다. 한국계 미국인 문제라면 몰라도 난 한국문화에 대해 얘기할 자격이 없다. 내가 좀 유명해진 건 사실이라서 책임감을 느낀다. 중국 작가나 일본 작가들에 비해 한국작가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다. 한국 작가들의 우수한 작품이 훌륭한 번역으로 좀 소개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에 훌륭한 작가가 많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지만 미국에 소개된 작가는 없으니 답답한 일이다. "

- 다음 작품 구상은?

"구상 중인 작품 중 하나는 한국전쟁 후에 서울 근처에 살게 된 한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재미있는 성격의 주인공을 발견했는데 그 주인공에 맞는 스토리를 찾느라고 연구중이다. 하도 자주 바뀌니까 아직 구체적인 얘기는 못하겠다."

미국인 아내, 세살배기 딸과 함께 뉴저지에 살고있는 작가는 현재 신작출간에 때맞춰 독자사인회와 강연을 위해 전국 순회여행중이다.

이 인터뷰는 여정 첫출발지인 LA에 있는 작가와 전화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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