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두진씨 1주기맞아 시집 '당신의 사랑앞에'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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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가을이 곱게곱게 잎새로 물이 들어/저절로 땅에 펄펄/말없이 떨어지네//파아랗게 하늘 높고/구름 한 점 없고, //햇덩어리 누엿누엿 서녘으로 기우는/노오랗게 붉게 타는/해걸음의 강가…세월이란 무엇이며, 영원이란 무엇일까/있음이란 무엇이며/없음이란 또한 무엇일까. //누구일까, 이 지금의 나/나라는 나는 무엇일까//해 떨어진 노을 언덕 풀밭에 누워/별을 보며 달을 보며/눈물 글썽이는" (시 '가을, 낙엽, 별' 중에서)

자연과 인간과 신을 노래한 혜산 (兮山) 박두진 (朴斗鎭.1916~1998) 시인의 1주기 (9월16일) 를 맞아 말년의 시 78편을 한자리에 모은 시집 '당신의 사랑 앞에' (홍성사.8천6백원)가 나왔다.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 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 해방 이듬해 조지훈.박목월과 3인 공동시집 '청록집' 을 펴낸 이래로 자연은 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주목돼왔다.

청록파 3인 중에도 혜산의 자연은 종교적이면서 자기 성찰적인 것이 특징. 80년대말에 발표한 시 다섯편을 포함, 95년 병석에 눕기전까지 각종 지면에 발표한 시 78편을 부인 이희성 (동화작가) 씨가 직접 엮은 이번 시집 역시 시인이 평생 1천여편의 시에 담았던 그같은 시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4부로 나뉘어진 시집의 1부와 2부는 각각 경기도 안성 청룡산 일대에서 보낸 어린시절의 자연을 다룬 시들과 '수석영가 (水石靈歌)' 연작처럼 자연에 신앙인적 감수성이 투영된 시들. 새나라 건설의 염원을 담은 해방직후 작품 '해' 로 유명한 시인이 각종 절기와 행사에 맞춰 축하와 기원을 담은 시들은 3부로, 기독교적 세계관이 두드러진 시들은 4부로 묶었다.

시인이 간 뒤에 남은 이같은 시들은 한 제자의 회고처럼, "별빛같은 눈빛" 으로 "생명의 영원 "을 지향하던 시세계의 축소판인 셈. 시집 말미에는 발표지면과 날짜가 꼼꼼히 정리돼있어 시인의 사유를 추적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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