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대국이지만 또한 소국, 덩샤오핑의 말 아직 유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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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베이징에서 본사가 마련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이론 세미나’에 참석한 중국 교수들이 토론 후 한자리에 섰다. 왼쪽부터 먼훙화, 차이퉈, 리이후, 웨이링, 타이리화, 양촹, 리바오쥔, 장성쥔 교수. [베이징=김경빈 기자]

“중국은 강국도 선진국도 아니다. 단지 신흥대국일 뿐이다.”

중국 학자들이 진단한 ‘오늘날 중국’의 현주소다. 폭발적 영향력은 가능하지만 그 폭이 전면적·지속적일 순 없다는 얘기다. G2라는 말에도 거부감을 보였다. 본지가 ‘신중국 60년’의 결산 기획으로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北京) 현지에서 마련한 ‘신중국 60년: 중국 학자 이론 세미나’에서 나온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당·정·학계에 두루 영향력을 갖고 있는 8명의 중국 학자가 참석했다. 토론은 본지 국제부문 진세근 부장(전 베이징 특파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토론회 요지.

-중국이 굴기(崛起: 우뚝 일어섬)했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G2라는 개념까지 나왔다. 세계인들은 중국의 진짜 실력을 궁금해한다.

차이=“세계 3위의 GDP를 고려하면 굴기라는 말이 맞다. 그러나 중국은 신흥대국일 뿐이다. 선진국이 아니다. 폭발력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전면적이거나 지속적일 수 없다. G2라는 말은 실현 가능하지도, 성취할 수도 없는 개념이다.”

리바오=“굴기라는 말은 다소 이른 감이 있다. 중국은 책임 대국이긴 하지만 강국은 아니다. 국민 소양이나 관리 능력을 선진국과 비교할 때 차이가 크다.”

먼=“그래도 종합 국력이나 GDP로 볼 때 굴기는 맞다. 다만 ‘균형적인 굴기’가 아니란 것이 문제다. 전면 굴기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중국의 도전은 내부에 있다. 우선 내정부터 신경 써야 한다.”

웨이=“덩샤오핑(鄧小平)은 ‘우리는 대국이지만 또한 소국’이라고 했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중국의 GDP가 세계 3위지만 인구가 많아 평균 GDP는 100위권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굴기는 아직 멀었다. G2라는 칭호도 부담된다. 중국은 미국 같은 차원에 있는 국가가 아니다.”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 전체가 변화하고 있다. ‘중국발 아시아 재편론’까지 등장했다.

차이=“두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 국제질서의 창조자로서의 역할이다. 둘째, 국제관계 균형자의 임무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중간에서 이익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할 것이다.”

먼=“동의한다. 중국의 굴기는 전 아시아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선 각종 국제기구에 참여한다. 국제제도의 완비에도 협력한다. 새 질서 구축에도 적극 참여 중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 능력이다. 중국은 ‘책임 국가’를 국가 이미지로 삼고자 한다.”

장=“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중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의 굴기가 아시아 안정에 유익하지 않은 요소도 있다. 최근 시작된 아시아 내의 군비 확장 경쟁이 일례다.”

리바오=“맞는 얘기다. 중국의 성공은 오히려 주변 국가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중국의 평화 발전 전략과 정책은 주변 국가들에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웨이=“그러나 아시아 내 중국의 위상은 계속 상승 중이다. 책임 대국이라는 인식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자리 잡은 개념이다.

-지난 60년간 중국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사회적인 변화가 특히 두드러진다.

먼=“우선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대규모로 이동했다. 노동시장의 유동성을 제약했던 호구제도도 바뀌었다. 하지만 지역 간, 도농 간, 동서 간 격차는 여전하다. 중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방면에서 사회주의 초급 단계의 중간점을 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타이=“경제 발전 과정에서 사회 계층 간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격차가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남미의 경우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정치 불안정을 초래했다.”

-세계의 가장 관심거리는 공산당의 집정(執政) 이념이다. 지난 60년간 시대에 맞춰 그 이념도 변해왔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리바오=“60년간 집정 이념은 독립적·민주적·평화적·통일적인 신중국 건설이 강령이다. 이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보면 무실역행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리이=“공산당의 집정 이념은 계급투쟁→경제건설→인본주의적 조화사회 건설로 확장 변화해 왔다. 지역·계층·민족 간 균형 발전을 당의 집정 이념으로 볼 수 있다.”

- 시대적 도전 앞에서 집정 이념에 보완과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리이=“중국이 일당제 국가라는 말은 틀린 견해다. 중국은 공산당 영도 아래 8개 민주당파가 상호 협력하는 모델을 택하고 있다. 8개 당파는 정책 개발과 정책 변용 등 국가의 주인으로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양=“중국의 일당 집정은 중국적 특수성을 반영한 결과다. 중국은 역사상 양당제를 채택한 적이 없다. 공산당은 국가 지도력의 핵심이다. 앞으로 당내 민주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감시·감독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하는 것이 숙제다.”

-중국은 스스로의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국가가 됐다. 세계를 겨냥한 중국의 전략이 세계적 관심사가 되는 이유다.

먼=“중국은 5단계 국제전략 프레임이 있다. 첫째, 평화 발전이다. 평화적 국제환경이 중국 발전의 모태이며, 중국의 발전이 세계 평화의 촉진제가 되는 방식이다. 둘째, 조화세계다. 국내 문제와 대외 협력이 결합하는 중간점이 세계 평화다. 조화세계는 중국이 책임 대국으로 가는 전제조건이다. 셋째, 공동이익 추구다. 넷째, 윈윈 원칙의 대외 개방이다. 이는 책임 대국으로서 중국의 방향성을 상징한다. 다섯째, 책임 대국이다. 점진, 평화, 민주의 방식으로 국제질서를 바꿔나가는 일이다.”

양=“세계 3대 경제 대국이 됐다는 이유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힘을 기름), ‘유소작위’(有所作爲·필요할 때 할 역할을 함)의 외교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중국의 발전에 유익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정리=정용환 기자(베이징)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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