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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전작권 회수 어리석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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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언제부터인가 우리 것을 찾자는 의식들이 되살아나면서 거의 모든 행사에 북 치고 장구 치고 사물놀이 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문화에서 우리 고유의 것을 찾아가자는 뜻은 바람직하다. 전통 복장을 한 덕수궁 앞 수문장 교대식은 외국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외국도 군 의장대의 경우 전통 복장을 하는 예가 많다. 그런 의전행사에 시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창과 칼 싸움을 하는 모습을 국군의 날 대표적 행사의 하나로 보여 주는 것이 혹시 비뚤어진 ‘자주 의식’의 표현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가장 강조한 것은 ‘자주’였다. 이는 한·미 동맹의 해체를 겨냥한 것이었고 그 핵심은 전시작전권 회수였다. 그는 “반미 좀 하면 어때”를 시작으로 하여 “전쟁이 나면 한국 대통령은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갖고 있지 않다” “전작권 행사를 통해 명실상부한 자주 군대로 거듭날 것”이라고 거듭 밝힌 바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주국방을 반대할 사람이 없다. 우리 힘으로 우리 국토를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 역량이다. 국방은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군 수뇌부들이 우리 군의 역량을 과연 얼마나 솔직하게 보고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행태를 보면 유추는 된다. 서해교전에서 우리 해군 장병의 손발을 묶어 놓아 뻔히 이길 수 있는데도 눈을 뜨고 당하게 만들고, 그 억울한 전사자들의 장례식조차 외면했던 수뇌부들인데 노무현 시절이라고 달라졌겠는가. 한술 더 떠 군에서도 ‘자주’의 상징으로 칼 싸움 창 싸움을 하고 북 치고 꽹과리 치는 행위로 아부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직도 그때의 문화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가 궁금하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직업 군인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피력한 사례가 많다. 6·25전쟁 때 트루먼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물러난 맥아더 사령관을 비롯해서, 이라크전의 작전에 반대하여 물러났던 미 장성들, 최근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간 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매크리스털 사령관도 있다. 정권을 초월하여 나라의 안위를 책임지는 것이 군인의 직업적 소명이다. 2012년 4월까지 전작권 회수 준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미연합사 해체에 서명한 당시 국방부 장관과 군 수뇌부는 과연 군인의 소명을 다했다고 생각하는가.

전작권을 회수했다고 치자. 핵무장한 북한이 공격하려 할 때 우리는 무슨 작전으로 대응하려는가. 단 한 발의 초보적인 핵폭탄에도 서울에서 50만~100만 명의 사망자를 낼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2007년 국가비상기획위원회 연구과제)를 알면서도 무작정 전시작전권만 회수하면 자주국방이 되는가. 우리는 영원히 북한의 볼모가 되는 것이다. 눈을 조금만 더 넓게 떠 보라. 세계 2위의 군사대국으로 이미 성장한 중국을 뻔히 보면서 그 옆에 맹장처럼 붙은 이 작은 나라가 ‘자주’만 외친다고 나라를 지킬 수 있겠는가. 왜 이미 확보한 안보의 벽을 스스로 허물지 못해 안달인가. 최소한 북핵이 해결될 때까지, 더 멀리는 동북아 나라들이 서로 믿을 수 있는 집단 안보가 정착될 때까지 미군을 붙잡아야 한다. 더 이상 잘못된 자주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전작권 회수는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