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로 부활하는 천년의 사랑-서울예술단 '향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신라인의 사랑과 삶의 편린을 짧은 시구에 담아낸 향가 (鄕歌) .천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아름다운 시가가 가무악으로 다시 태어난다.

서울예술단이 현재 남아있는 향가 25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서동요' 와 '헌화가' '찬기파랑가' 를 모티브로 한 '향가 - 사랑의 노래' 를 9월 30일~10월 3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올리는 것.

서울예술단은 향가가 단순한 시 (詩) 라기 보다는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설화와 전설같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어 가무악 소재로 적합하다고 보고 신선희 총감독 취임 직후부터 이 작품을 준비해왔다.

'사랑의 노래' 는 세 수의 향가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었다. '서동요' 는 서울예술단 무용감독 손인영씨가 안무를 맡았고 '헌화가' 와 '찬기파랑가' 는 한국무용가 최현씨와 현대무용가 안애순씨가 각각 맡아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랑을 펼쳐 보인다.

영국 파이든사가 발행한 '20세기 패션인들' 에 수록되기도 한 패션디자이너 진태옥씨가 세 작품 모두의 의상을 맡아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무용의상을 선보인다.

'서동요' 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를 사모한 적대국 백제 무왕의 재치가 드러난 노래다. 몰래 신라의 수도 경주로 들어가 어린아이들에게 선화공주와의 사랑을 암시하는 이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사랑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현실적으로는 맺어질 수 없는 사이지만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이 사랑을 손인영씨는 한국 전통 춤과 현대무용 테크닉을 접목시켜 보여준다.

절대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수로부인 설화로 유명한 '헌화가' 는 철쭉과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현실세계가 아닌 정신세계로 치환시켜 표현한다.

무용으로만 꾸며지는 '서동요' '헌화가' 와 달리 '찬기파랑가' 는 시인 강은교가 작시한 노래를 소리꾼 박윤초가 부르는 등 가무악 형식에 가장 잘 맞는 작품이다.

충담사가 화랑의 표상인 기파랑을 추모하며 부르는 노래로, 남녀의 사랑이 아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형이상학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안애순씨는 '찬기파랑가' 를 단순한 추모가에서 한발 나아가 기파랑을 인간의 순수함을 되찾게 해주는 메신저 역할로 바꾸었다.

충담사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돌을 던지는 행위로부터 시작해 대금소리에 맞춰 기파랑이 등장하고 군중들의 폭동이 이어지는 등 다양한 장면이 많은 볼거리를 준다.

연출은 장수동, 무대미술은 신선희씨가 맡았다. 02 - 523 - 0986.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