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강세 업고 美·동남아 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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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26면

지난달 22일 항공기에서 내려다본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주택가. 이곳의 집값은 2006년 정점 대비 40% 이상 떨어져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원화 가치가 상승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국내 주택 시장의 규제가 늘어난 데 따른 풍선효과,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주택 가격도 틈새 시장인 해외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이유다. 2007년까지 늘어나던 해외 부동산 투자는 지난해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세계 시장의 침체, 고환율, 부동산 금융 위축 등 삼중고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리먼 사태 1년, 다시 보는 해외 부동산

해외부동산 전문 중개회사인 에스그룹리얼티 송동훈 이사는 “시장 조사만 해오던 한국인들이 원화 가치가 오르자 투자를 적극 집행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며 “빚 없이 현금으로만 사기보다는 현지 모기지를 활용하려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유학 자녀용으로 구입하려는 부유층뿐 아니라 임대 수익과 매매 차익을 동시에 노린 투자자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캐나다·호주뿐 아니라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까지 유학 자녀용 주택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랜드러버스코리아 류일환 부사장은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의 집값이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크게 하락하자 임차해 살던 한국인들이 직접 주택을 보유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현지에서 주택 가격의 80%까지 연 2~3%에 대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당 1200원 정도의 환율에서는 환차손 걱정을 거의 하지 않는 게 이쪽 분위기”라고 말했다. 재료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한국 투자자가 출몰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내년 하계 아시안게임이 열릴 중국 광둥성 광저우 일대다. 이곳에는 중국 대륙과 홍콩·마카오의 화교계 큰손뿐 아니라 재중동포와 일부 한국 주재원까지 은행 대출과 해외송금을 통해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투자를 문의하는 한국 개인투자자는 주택의 경우 100만 달러 미만, 상업용은 300만~500만 달러 사이를 주로 찾고 있다. 주로 찾는 지역은 LA 등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과 맨해튼처럼 한국인에게 인지도가 높은 곳이다. 뉴저지 한인부동산 관계자는 “한동안 잠잠했으나 최근 구입 후 임대할 수 있는 투자용 주택에 한국인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며 “주 수요층은 유학 자녀가 졸업한 뒤 직장을 구하는 것에 대비하거나 은퇴 후 미국을 왕래하며 인생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사모 펀드를 만들어 임대용 주택을 여러 채 구입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이 떨어진 콘도를 통째로 구입해 당분간 임대 수익을 취하면서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회복되면 매매 차익까지 거두겠다는 계획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해외 부동산 취득은 2분기 130건, 466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99건, 1억8010만 달러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러나 월별로 보면 투자 회복세가 감지된다. 올 6월엔 2270만 달러(51건)로 5월의 880만 달러(32건)에 비해 건수나 금액, 모두 증가했다. 해외 부동산 취득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지난해 10월 2970만 달러(26건)를 기록한 후 올 1월 400만 달러(10건)까지 급감했다가 올 2월 1070만 달러(28건), 3월 640만 달러(23건), 4월 1510만 달러(47건) 등으로 조금씩 증가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투자액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해외 부동산에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원화로 환산해서 하락률 따져야”
미국의 경우 2006년 정점에 견줘 주택 가격이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이 큰 매력이다. 미국 뉴욕 부동산을 중개하는 에스그룹리얼티 관계자는 “가격이 떨어져 있는 맨해튼 남쪽의 신축 콘도를 권하고 있다”며 “2년 전 평방피트당 1700달러에 분양하던 맨해튼 남쪽 신축 콘도(한국의 아파트)의 경우 현재 1200달러 안팎에 그쳐 달러 기준으로 30%가량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달러당 1200원의 환율을 단순 적용해 한국인이 익숙한 평(1평=약 35.58평방피트) 단위로 환산하면 평당 약 7300만원이던 아파트 값이 평당 약 5200만원으로 하락했다는 얘기다. 이런 계산법에는 함정이 있다. 환율 변수다. 원화 가치가 2년 전 달러당 95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원화 기준 분양가 하락률은 30%가 아니라 10% 남짓이다. 원화 가치가 더 오를 경우엔 현지 부동산 값이 오르더라도 원화 환산 수익률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한인이 많이 사는 LA에서도 콘도나 상가의 ‘떨이 세일’이 한창이다. 3년 전부터 다운타운과 한인타운의 주상복합 대형 고층콘도는 시 당국의 개발 프로젝트에 힘입어 인기몰이를 했던 곳이다. 그러나 요즘엔 시행사들이 40% 정도 할인해 분양하고 있다. 일례로 한인타운 중심지에 들어선 23층 주상복합 솔레어는 80만 달러에 분양하던 것이 지금은 55만 달러다. 동남아 사정도 비슷하다. 류일환 부사장은 “3.3㎡에 1500만원까지 나가던 말레이시아 주택이 요즘엔 900만~10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의 불똥이 덜 튄 캐나다 밴쿠버 등은 집값이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격만 보고 덤비는 투자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상업용보다 주거용이 덜 위험”
남들이 모두 사겠다고 할 때는 매도자 우위 시장이 된다. 가장 쌀 때 구입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매수 희망자가 가장 적은 매수자 우위 시장에서 은행 대출을 쉽게 얻고, 유리한 거래 조건을 관철시킨다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역발상(contrarian) 투자’다. 이처럼 다소 불확실한 시장에 투자할 때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최소 투자기간을 3~5년 정도로 길게 잡고, 부동산을 구입한 뒤 얻을 수 있는 임대수익으로 추가 송금 없이 재산세나 유지 관리 비용, 모기지 원리금을 충당할 수 있어야 안전하다. 루티즈코리아 조재한 팀장은 “최근 한국 투자자에게 분양되고 있는 괌 부동산의 경우 한 달 임대료로 유학 자녀 교육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투자자의 관심을 끌었다”며 “부동산을 구입한 뒤 유지관리를 어떻게 할지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거용이 아닌 상업용 부동산에는 역행 투자가 매우 위험하다. 상업용 부동산 중 오피스·상가·호텔·골프장은 북미 전체적으로 바닥을 치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캐나다 밴쿠버의 게이트웨이부동산 김영수 대표는 “눈먼 동양인에게 떠넘기려는 생각으로 접근해 오는 상업용 부동산 주인이 있으나 자료를 요구하면 대개 도망간다”며 “원화 가치가 더 오르고, 북미 지역에서 상업용 급매물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U자형 회복이라면 바닥 부분에서 상승 속도가 빠르지 않으므로 반 발 앞서기보다는 바닥을 확인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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