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살아있다] 13. 이사람이 돈버는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성제한의원 김윤병 (金允秉.74) 원장은 새벽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자신의 점포 골목길을 청소한다. 한의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깨끗한 길' 을 밟게 하기 위해서다.

金원장과 한 건물에서 한약재 점포를 운영하는 장남 김희동 (金熙東.49) 씨가 아침 일찍 그에게 문안인사를 하러 온다.

"한약은 정성이 제일이다. 정성이 없으면 천하명의 처방도 소용이 없어. " 金원장이 아들에게 매일 하는 말이다.

그가 의서 (醫書) 를 잡은지는 벌써 60년째. 그의 부친인 김영우 (金永佑.작고) 씨가 한의원을 차린 이후 대를 잇고 있다. 그는 부친의 일을 돕다 해방 후 경희대 한의대 전신인 동양한의대를 졸업하고 고향인 경북 상주에서 개업했다.

고향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 는 소리를 들을 때쯤 그는 서울의 경동약령시로 터전을 옮겼다. 더 큰 시장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서울에 가면 쉽지 않을 것" 이라며 극구 말렸다. 친구들 말처럼 그는 서울에서 한동안 사업상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심지어 한의원 문을 연지 한 달 동안 환자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실의에 빠진 金원장을 찾아온 첫 환자는 40대 주부였다. 그녀는 이름난 한의사의 처방전을 내밀며 '이대로 약을 지어달라' 고 요구했다.

"무심코 약을 지으려다 누가 먹을 건지 물었더니 자기 어머니라더군. 그러나 처방전은 노인에게 맞지 않는 약재들이었어. " 金원장은 이를 염려해 그녀가 가져온 처방전에 따른 약과는 별도로 자신이 지은 약을 내밀며 어느 쪽이 더 효험이 있나 보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한달 후 다시 찾아와 그의 약이 더 효험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런 소문이 장안에 퍼지면서 그의 한의원은 날로 번창했다.

그는 밝히기를 꺼리지만 요즘도 한달 평균 1천만원대의 매출을 올린다고 귀띔한다.

그의 한의원 건물 (4층짜리) 이 당초 낡은 한옥에서 현재는 10억원을 호가하는 빌딩으로 변했다는 말로 '돈을 벌었다' 는 표현을 간접적으로 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늘 '약은 정성' 이라고 말씀하셨지. 내가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성공은 없었을 거야.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