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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석연찮은 한라중 위탁경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라중공업을 위탁경영해 달라는 제의도 없었고 그럴 계획도 없다. " 현대중공업의 증시 상장을 하루 앞둔 지난달 23일 조충휘 (趙忠彙)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잘라 말했다.

나흘 뒤인 27일 현대의 한라중공업 실사팀 30여명이 전남 영암 삼호조선소를 찾아 재무상태.재고 등을 샅샅이 점검했고 30일에는 한라중공업 위탁경영 방침이 공식 발표됐다.

趙사장의 말이 '사실' 이라면 금융권 부채만 7천6백억원에 달하는 한라중공업의 위탁경영을 불과 사나흘만에 결정한 셈이 된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현대가 빚 보증서면서 위탁경영하겠다는 방침을 미리 결정해 놓고도 상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거짓말' 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는 올 초부터 계속된 한라의 인수 또는 위탁경영 제의를 강하게 거부해 온 점을 감안할 때 위탁경영은 갑자기 방향이 선회된 것임에는 틀림없다.

현대측의 공식 입장은 '국가 기간산업을 살리고 지역경제 (전남 목포.영암) 의 붕괴를 막기 위한 결정' 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았다" 고 말한다.

이런 결정의 배경은 무엇일까. 정주영 - 정인영 명예회장간 형제애를 들어 '피는 물보다 진하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이었다면 그야말로 대주주의 '독단' 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대주주 몇 사람의 기업이 아니다.

지역주민들의 탄원과 정치권 실세들의 압력에 현대가 굴복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만의 하나 사실이라면 더욱 문제다.

한라 입장에서는 위탁경영이 최후의 선택임은 사실이다. 1조1천억원이나 투입된 국가기간 산업이 파산의 길을 걷는 것도 국가 경제 차원에서 큰 손실이고 만약 한라가 이번 일을 계기로 회생의 길을 찾는다면 모두에게 더할 수 없이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의 배경은 극히 의혹투성이고 전망 역시 썩 밝지 못한 상황이다. 만의 하나 동반부실화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가.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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