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감상노트-미술] 신장식·김명숙展 은은한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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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가을은 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울긋불긋 자연이 펼치는 색의 향연에 취해서일까.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을에 미술의 참맛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른바 '탈 (脫) 장르' 라 하여 비디오.오디오.컴퓨터 등을 사용한 매체 미술이 유행한 지도 제법 된 것 같다. 이제 전통적인 회화 작품은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내 생각에 조각.사진.설치 등 여러 미술 분야에서 가을과 가장 어울리는 것은 회화가 아닐까 싶다.

우리 선조들은 유명한 산천을 그려 놓고 그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보면서 인생을 즐겼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93년부터 '금강산' 을 주제로 자연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 재현해온 신장식 (표 갤러리.3~17일) 과 겸재 정선의 진경 (眞景) 정신을 서양화에 접목시킨 김명숙 (금호미술관.8~26일) 의 개인전은 가을에 잘 어울리는 전시다.

동양에는 풍경을 그리는 두가지 태도가 있다. 실경 (實景) 과 진경이다. 실경이란 쉽게 말해 정해진 형태를 그대로 그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작가의 예술적 재량과 재질로 산수화를 그리는 것이다.

진경이란 도교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의 신비하고 오묘하며 꿈 속에서 펼쳐지는 것 같은 경치를 말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림 (실경)에 도교적 이념이 들어있는 것이 진경인 것이다.

신장식의 금강산 그림은 한지에 아크릴 물감으로 골짜기와 수림을 숙련된 필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예리하고 빠른 기법이 금강산 실경 그대로의 운치를 듬뿍 살렸다. '꿈에라도 걸어보고 싶은' 애틋한 감정이 실려 있는 것 같다.

김명숙의 풍경화는 흔히 말하는 풍경과는 다르다. 아름답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고 다만 우리가 손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불특정한 풍경에 시선을 던진다.

주관은 배제돼있다. 황폐한 문명, 억눌린 욕망, 슬픔, 꿈 등 추상적인 인간의 자취를 담담히 읽어낸다.

애틋함과 묵묵함. 밖으로 드러나건 속에 침잠돼 있건 빛나는 무위 (無爲) 의 침묵이다. 그 침묵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두 화가의 그림을 보며 이 가을을 아름답게 채워보자.

신정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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