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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파나콤은 '崔회장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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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름의 끝, 미국의 파나콤사 - 최순영 (崔淳永) 회장 연합세력과 정부간 법정공방으로 '대한생명 파문' 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승부처는 오늘 (31일) 열리는 행정법원의 본안소송 판결. 정부가 대생에 내린 부실금융기관 지정 및 감자 (減資) 명령에 대해 파나콤측이 사유재산 침해는 물론 자구 (自救) 노력을 막는 불법이라며 낸 소송에서 법원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승부의 명암이 갈리게 된다.

일단 본안소송에 앞서 지난 13일, 28일 두번의 가처분 판결에서 법원이 '재산권' 을 인정, 崔회장쪽 손을 들어주면서 지금까지는 정부가 '법적으로' 열세에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승부는 이미 '양패구상 (兩敗俱傷 - 둘 다 패하고 다침)' 으로 치닫고 있다는 게 중론. 이미 누가 이기든 정상화 시기를 놓쳐 대생의 추가 부실과 그에 따른 고객재산 보호를 위한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 이래저래 애꿎은 국민세금만 더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 '최순영 리스트' 는 대생 파문의 예고탄이었다 = 지난 2월 12일 崔회장이 전격 구속되고 이른바 '최순영 리스트' 가 나돌면서 대생 파문은 확산되기 시작했다.

3월 말 이정보 (李廷甫) 전 보험감독원장이 전격 구속된 데 이어 4월에는 이수휴 (李秀烋) 전 은행감독원장.홍두표 (洪斗杓) 전 한국방송공사 사장이 崔회장의 '떡밥' 을 문 대가로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5월 말 터져나온 '옷로비' 사건은 6월 초, 崔회장을 구속했던 검찰의 총수 김태정 (金泰政) 전 법무부장관을 물러나게 했다.

이들의 구속과 해임이 대생에 대한 崔회장의 집착이 빚어낸 결과물인 점을 감안하면 최근 대생 구조조정을 둘러싼 법정공방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는 평이다.

◇ 지금까지 시간은 崔회장 편이었다 = 감독당국이 대생의 거대한 부실을 알아챈 것은 1월 하순. 당시 대생과 10억달러 투자협상을 벌이던 미국의 메트라이프생명측이 실사 결과 순자산 부족이 3조7천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금융감독원에 알려주면서다.

부랴부랴 금감원은 특별검사에 착수, 3월 13일 2조9천억원이 '구멍' 난 대생에 관리명령을 내리면서 해외 매각작업을 시작했다.

이때 바로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경영개선명령을 내린 뒤 법적절차를 밟았다면 대생 구조조정은 손쉽게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는 국민세금을 절약한다는 명분으로 가능한 비싼 값으로 대생을 팔기 위해 이같은 법절차를 생략했다.

두번째 시간 역시 崔회장의 것이었다. 4월 들어 崔회장 파문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워지자 금감위는 매각을 서둘렀다. 그러나 잠이 길면 꿈도 긴 법. 5월 중 끝내겠다던 해외매각은 세차례나 재입찰을 거치면서 8월까지 끌게 됐다.

마침내 지난 8월 6일 금감위는 일단 매각을 포기하고 공적자금 투입 후, 선 (先) 경영정상화 후 (後) 매각의 대한생명 정상화 조치를 의결했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정부의 편이 아니었다. 崔회장은 벌써 미국의 파나콤사와 연합전선을 구축, 법정에서의 한판 승부를 벌일 만반의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 파나콤은 崔회장의 또다른 얼굴?=미국의 파나콤사가 얼굴을 드러낸 것은 지난 6월 대생 3차입찰 때부터. 당시 파나콤측은 3조원을 투입해 대생을 즉각 회생시키겠다고 투자제안서를 냈다.

금감위는 입찰보증금 2백억원과 투자실적.자금동원능력 등을 입증하는 자료제출을 요구했으나 파나콤은 이들 서류를 내지 않은 채 미국 국회의원의 추천서 등만을 들이밀며 다른 서류로 대체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즈음 파나콤이 '崔회장의 대리인' 이라는 소문이 재계에 나돌자 금감위는 즉각 파나콤의 실체 조사에 착수했다.

우선 미국 뉴욕에 있는 금감위의 법률자문회사 (그레이엄&제임스) 를 통해 알아본 결과 공식적으로 공개된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다만 미국 최대 신용조사회사 D&B의 자료에 따르면 파나콤은 지난 97년 직원 4명으로 설립된 상품브로커라는 회신이 왔다.

또 7월 중 금감원 뉴욕사무소 직원이 미국내 펀드 운용 관련자들을 직접 만나 파나콤에 대한 실체 확인작업을 벌인 결과 아무런 자료나 정보가 없고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7월 말 다시 그레이엄&제임스를 통해 파나콤이 투자재원이라고 밝힌 뉴저지주 연기금 운용담당자에게 문의한 결과 뉴저지주는 연기금을 위탁운용하지 않으며, 다만 며칠 전 파나콤에서 연기금 운용에 대해 전화로 물어와 대답해준 적이 있다는 말만 들었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에 따라 금감위는 파나콤사가 사실상 崔회장의 대리인이란 심증을 굳히고 파나콤측이 주장하는 '외자유치나 독자회생' 은 대생의 경영권을 되찾기 위한 崔회장의 전략으로 판단, 배수의 진을 치고 법정공방을 진행 중이다.

[대한생명 처리 일지]

98.1. 메트라이프생명과 외자유치 협상 착수

12.31 대한생명과 메트라이프, 정부 지급보증 전제한 합작계약 체결

99.1.27 정부, 대생 외자유치에 대한 정부 지급보증 불가 통보

2.11 최순영 회장 외화 밀반출 혐의로 구속

3.23 대생 관리명령, 정부 주도 매각 착수

4.22 대생 최순영 회장 문책요구

5.8 대생 1차 입찰, LG 등 4개사 참여

5.18 1차 입찰 유찰

6.7 2차 입찰, 한화그룹 등 8개사 참여

6.18 2차 입찰 유찰6.28 3차 입찰, 파나콤 등 5개사 참여

6.30 대생 주총에서 최순영 등 임원 4명 해임

7.27 최순영 회장 선고 (징역 6년)

8.5 대생 기습 이사회 및 주주총회 파나콤측 인사 사외이사 선임

8.6 3차 입찰유찰 및 경영정상화 조치부실금융기관 지정, 8월 14일까지 기존 주주 지분 전액 감자 명령

8.9 최순영, 부실 금융기관 지정 등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8.13 서울행정법원, 8월 31일까지 감자명령 유보 판결

8.24 대생 이사회, 5백억원 신주발행해 파나콤에 전액 배정 결의

8.26 금감위, 대생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신청

8.26 서울지법, 금감위 가처분 신청 기각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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