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눈길끄는 영화 '김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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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영화 '김의 전쟁'. '테러리스트'의 김영빈 감독이 지난 92년 데뷔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유인촌과 이혜숙이 출연, 작품성도 상당히 인정받았으나 안타깝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영화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지금은 비디오 판매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잠시 먼지 구덩이에서 끄집어내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 바로 김희로 (金嬉老.71)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기 때문이다. 소중한 자료처럼 다가온다.

김씨는 재일 (在日) 한국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야쿠자 (폭력단원) 2명을 살해, 감옥에서 31년을 보낸 재일교포 무기수. 그가 가석방돼 다음 달 7일 고국의 품에 안긴다.

때 맞춰 그의 이야기를 다룬 '김의 전쟁'도 새롭게 조명받을 기회를 잡게 됐다.

김희로의 삶의 궤적이 그렇듯, 이 영화는 재일교포 차별에 대한 교포들의 저항정신을 다뤘다. 이런 날줄에다 사랑.우정.이별.액션 등의 극적 요소를 씨줄로 엮어 박진감 넘치게 표현, 감동과 재미를 안겨준다.

당시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받은 배우는 역시 김희로를 열연한 유인촌이었다. 유씨는 이 작품으로 그 해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라스트신 촬영을 위해 7일간 단식을 했다. 새삼 88시간 동안 한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은 채 불의에 저항하며 인질극을 벌인 김씨의 초인적 정신력에 감동했다."

유씨는 이처럼 처절한 리얼리즘 연기를 통해 김씨의 강건한 삶을 체화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연기가 빛났다'는 평가를 얻었다.

제작사인 한진흥업은 이 영화를 위해 80일간 일본의 최북단 아오모리에서 나고야까지 올로케 촬영을 했다.

김씨의 불우한 성장 과정과 일본인 가수 후사코 (이혜숙) 와의 사랑 등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극중 인물 대부분이 일본어를 하는 것도 이 때문. 이런 노력 덕분에 영화 촬영이 진행되면서 타이틀인 '김의 전쟁' 은 김희로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어가 됐다.

" '김희로' 라는 개인이 일본 전체를 상대로 한 싸움이라는 뜻에서 '김의 전쟁' 으로 제목을 정했다. 당시 재일교포 사이에서도 김씨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갈래였다.

부유층은 단순 깡패 사건으로 보았지만, 젊은층과 노동자들에게는 안중근에 비견되는 '영웅' 이었다. 바로 그 '영웅상' 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다. 김씨 말고 누가 있어 일본을 이긴 적이 있는가."

한진흥업 한갑진 대표의 말이다.

김씨의 삶은 이미 책으로도 국내에 소개됐다.

91년 나온 '김희로, 나의 전쟁' (춘추원) 과 '김의 전쟁' (범우사) 이 그것. 일본작가 혼다 야스하루의 원작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들은 아직도 팔리고 있다.

하지만 영화 '김의 전쟁' 의 재개봉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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