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의 전쟁'. '테러리스트'의 김영빈 감독이 지난 92년 데뷔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유인촌과 이혜숙이 출연, 작품성도 상당히 인정받았으나 안타깝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영화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지금은 비디오 판매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잠시 먼지 구덩이에서 끄집어내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 바로 김희로 (金嬉老.71)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기 때문이다. 소중한 자료처럼 다가온다.
김씨는 재일 (在日) 한국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야쿠자 (폭력단원) 2명을 살해, 감옥에서 31년을 보낸 재일교포 무기수. 그가 가석방돼 다음 달 7일 고국의 품에 안긴다.
때 맞춰 그의 이야기를 다룬 '김의 전쟁'도 새롭게 조명받을 기회를 잡게 됐다.
김희로의 삶의 궤적이 그렇듯, 이 영화는 재일교포 차별에 대한 교포들의 저항정신을 다뤘다. 이런 날줄에다 사랑.우정.이별.액션 등의 극적 요소를 씨줄로 엮어 박진감 넘치게 표현, 감동과 재미를 안겨준다.
당시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받은 배우는 역시 김희로를 열연한 유인촌이었다. 유씨는 이 작품으로 그 해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라스트신 촬영을 위해 7일간 단식을 했다. 새삼 88시간 동안 한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은 채 불의에 저항하며 인질극을 벌인 김씨의 초인적 정신력에 감동했다."
유씨는 이처럼 처절한 리얼리즘 연기를 통해 김씨의 강건한 삶을 체화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연기가 빛났다'는 평가를 얻었다.
제작사인 한진흥업은 이 영화를 위해 80일간 일본의 최북단 아오모리에서 나고야까지 올로케 촬영을 했다.
김씨의 불우한 성장 과정과 일본인 가수 후사코 (이혜숙) 와의 사랑 등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극중 인물 대부분이 일본어를 하는 것도 이 때문. 이런 노력 덕분에 영화 촬영이 진행되면서 타이틀인 '김의 전쟁' 은 김희로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어가 됐다.
" '김희로' 라는 개인이 일본 전체를 상대로 한 싸움이라는 뜻에서 '김의 전쟁' 으로 제목을 정했다. 당시 재일교포 사이에서도 김씨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갈래였다.
부유층은 단순 깡패 사건으로 보았지만, 젊은층과 노동자들에게는 안중근에 비견되는 '영웅' 이었다. 바로 그 '영웅상' 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다. 김씨 말고 누가 있어 일본을 이긴 적이 있는가."
한진흥업 한갑진 대표의 말이다.
김씨의 삶은 이미 책으로도 국내에 소개됐다.
91년 나온 '김희로, 나의 전쟁' (춘추원) 과 '김의 전쟁' (범우사) 이 그것. 일본작가 혼다 야스하루의 원작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들은 아직도 팔리고 있다.
하지만 영화 '김의 전쟁' 의 재개봉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정재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