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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새롭게 드러나는 진실] 항암·면역등 다재다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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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버섯은 식물인가, 동물인가. 정답은 둘 다 아니다. 버섯은 동.식물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자영역 (균계.菌界) 을 개척하고 있다. 구태여 동.식물의 기준으로 본다면 버섯은 의외로 식물보다는 동물에 훨씬 가깝다.

국내외 학계에서 새로운 '버섯의 진실' 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달 초순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국제식물학총회 (IBC)에서는 5천여 명의 세계 식물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운 연구결과가 다수 발표됐다. 6년마다 열리는 IBC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식물학총회.

이번 총회에 참석한 미국 루이지애나대 러셀 채프만교수는 전자우편을 통한 기자와 인터뷰에서 "버섯.곰팡이 등 균류가 식물이라는 것은 낡은 지식" 이라고 밝혔다.

동물과 버섯의 닮은 꼴 중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 버섯의 세포벽 성분은 키틴. 키토산으로 널리 알려진 게껍질을 이루는 바로 그 물질이다. 키틴은 개미의 턱 등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보통 식물의 경우 세포벽은 키틴과 전혀 다른 셀룰로오스라는 성분으로 이뤄졌다.

또 버섯의 생식세포는 편모를 갖고 있다. 이 편모는 정자의 꼬리와 같은 것. 버섯의 생식세포가 슬슬 자유롭게 떠다니는 폼은 영락없이 동물 모습이다.

버섯 (균류) 을 식물로 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식물의 기본인 엽록소가 없다는 것. 따라서 광합성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줄기.뿌리.가지의 구분도 없다.

씨앗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세포인 포자를 이용해 공기 중을 둥둥 떠다니며 번식한다.

한 문헌에 따르면 균 포자의 수는 1㎥에 1만 개가 훨씬 넘는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곰팡이와 버섯 '씨앗' (포자) 이 주변에는 넘쳐난다.

실용 연구에서도 버섯 인기는 요즘 상한가. 강원대 성재모 교수팀은 국내 동충하초 (冬훼夏草) 분류에 여념이 없다. 동충하초란 말 그대로 겨울철에는 벌레 (번데기) 지만 여름이 되면 풀이 되는 것을 이르는 말.

그러나 여름에 나는 것은 실제로는 풀이 아니라 버섯의 포자가 벌레의 몸에 침입했다가 벌레의 양분을 빨아먹으며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항암.강정.피로회복에 좋다고 해 약제로도 널리 팔리고 있다. 동충하초는 숙주가 매미에서부터 개미.모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고 기생 버섯도 여러 종류여서 색다른 연구결과가 속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 엄태진교수팀은 버섯의 효소를 고지 (古紙) 재생에 이용하는 연구를 수행 중. 먹물버섯이 분비하는 효소는 폐지 등에 묻어있는 먹물을 분해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관계자는 "먹물버섯의 효소는 pH9 정도의 알칼리 용액에서도 탈묵 (脫墨) 효과가 높았다" 고 말했다.

기존 탈묵효소는 pH4 정도인 강산성에서 잘 작용하기 때문에 종이가 부드러워지려면 따로 알칼리화 하는 공정이 필요하다.

대구대 송치현교수는 느타리.상황버섯 등 식.약용 버섯을 액체 배양, 면역물질을 끄집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까지 실험결과 표고.팽나무.상황버섯 순으로 면역활성도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우석대 조덕현교수는 "세계적으로 버섯은 5만 종 정도로 추정되는데 국내에서는 5백여 종이 확인된 상태" 라며 "식물도 동물도 아닌 특수한 생태적 위치 때문에 버섯은 동.식물에서 찾기 힘든 유용한 물질의 보고 (寶庫)" 라고 말했다.

조교수는 최근 지리산의 피아골에서 자라는 화경버섯을 찾아내 관심을 끌고 있다. 광릉 근처에도 일부 서식하는 이 버섯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특성.

버섯연구는 국외에서도 활발한데 최근 미시간에서 발견된 버섯 한 송이는 무려 4만여평에 걸쳐 자라고 있었으며 무게가 청고래와 맞먹는 1백10톤으로 추정됐다.

또 워싱턴주의 한 버섯은 나이가 1천살이나 먹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형제뻘인 푸른 곰팡이가 페니실린으로 히트를 쳤듯, 21세기에는 버섯이 인류를 위해 큰 일을 해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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