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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변협의 대법원장 추천-이렇게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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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한변호사협회가 대법원장 후보추천을 추진하고 있어 대법원과 갈등을 빚고 있다.

변협은 "사법권 독립을 지켜낼 대법원장 선출을 위한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헌법위반과 함께 현직 판사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는 반론도 거세다.

◇ 필요하다 -林榮和 변호사

김대중 대통령은 김현철씨에 대해 잔여형기 면제라는 변칙적인 사면조치를 결정했다.

이는 법의 형평성과 국민 정서 및 사법부 독립에 비춰 용납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입장이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아직 판결문의 잉크도 채 마르기도 전에 뒤집혀진 김현철씨 변칙 사면조치에 대해 정작 대법원장은 아무런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대법원장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을 해친다고 생각해서인가.

지난번 사법 1백주년을 맞이해 법관들을 상대로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선생이 선정됐었다.

김병로 선생은 정부수립 후 초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한 이래 9년간 재임하면서 반독재와 인권보호.사법권독립.사법부 청렴운동 등의 소신을 폈던 인물이다.

특히 이승만 (李承晩) 대통령이 친일파처벌을 위한 반민특위활동에 관해 유화적 담화를 발표하자 정면으로 반박했고, 사사오입 개헌의 부당성도 통박하는 등 대통령의 부당한 정치적 간섭에 대항해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낸 법조인의 사표 (師表) 로 추앙받고 있다.

그 이후 불행하게도 우리는 역대 대법원장들 가운데 김병로 선생과 견줄만한 인물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대법원장 후보를 추천하겠다는 것은 이런 사정에도 연유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측은 이익단체이자 재판대상인 대한변협이 임의로 대법원장 후보들에 대한 평가작업을 한 뒤 추천하겠다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 반발하고 있다.

대한변협이 대법원장 후보들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임명할 때까지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못한 채 꿀먹은 벙어리로 있어야 할 정도로 후보를 검증하거나 추천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현재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등에 관한 특별검사법안과 관련, 특별검사의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냐, 대법원장이냐를 놓고 여야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대통령으로 정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특별검사는 대한변협이 추천토록 한다는데 여야가 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그동안 당리당략 차원에서 물고 뜯던 정치권조차도 대한변협의 추천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국회에서 임명 동의하거나 선출하는 공직자, 주요 권력기관의 장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인사청문회제도는 도입되고 있지 않다.

그러는 사이 검증되지 못한 인사를 고위 공직자로 임명했다가 자질부족으로 도중하차한 예도 많이 생겼다.

이런 시행착오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국민이다.

그래서 국민은 도대체 어떤 인물들이 국가 주요공직, 특히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으면서도 삼권분립기관 중 하나인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 후임으로 누가 임명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할 당연한 권리를 갖고 있다.

대한변협은 단순한 사적 (私的) 단체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적 인권옹호, 법률문화의 창달과 법 제도의 개선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익단체다.

그동안 대한변호사협회는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정치세력에 대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준엄한 비판을 해왔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사법권의 독립을 스스로 해치는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대한변협의 추천은 어디까지나 추천일 뿐이다.

추천했다고 당연히 그 추천의견에 얽매어 대법원장을 임명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끝으로 이번 논란에서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누가 검증하고, 누가 추천하고, 그래서 누가 임명되든지 간에 대법원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대법원장도 아니고, 또한 사법부 법관들이나 추천협회의 대법원장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대법원장이란 점이다.

◇ 옳지않다 -張錫權 단국대교수.헌법학

현 대법원장의 임기만료에 따라 대한변협이 오는 9월에 임명될 새 대법원장을 추천하겠다고 나서 치열한 찬반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이같은 변협의 발상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혹여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대단히 우려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제도는 국민의 정치적인 결단인 헌법에서 정하고, 여기서 정해진 제도도 헌법에 의해서 운영되는 체제다.

그러므로 그 국가가 어떠한 제도를 채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제도의 내용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때문에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여론의 힘으로 헌법에 규제된 제도를 변형시키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각국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법관임명제도도 각양각색이다.

영국.프랑스를 비롯해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은 정부가 임명한다.

미국 중앙정부와 한국은 정부와 의회가 공동으로 임명하고, 스위스에서는 의회에서 선출된다.

또 미국의 대다수 주 (州) 와 혁명기의 프랑스에서는 각각 국민에 의해 선출되거나 선출됐었다.

이밖에 우리 나라의 제2공화국에서처럼 법관선거인단에 의해 선출하는 경우와, 제3공화국에서처럼 법관추천회의가 제창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제도 등도 있다.

이렇게 법관임명제도는 그 국가의 헌법이 정한 제도에 따라 다르게 돼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대한변협이 헌법이 정한 제도를 무시하고 새롭게 대법원장 추천제도를 들고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대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는 경우에도, 첫째로 대법원장후보 지명권자인 대통령에게 강제적으로 추천한다면 그것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지명권을 박탈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다.

둘째로 그 추천이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이라면 그것은 굳이 거창하게 추천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는 권리행사에 불과한 것이다.

셋째로 국회에 제청 형식으로 추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헌법에 존재하지 않는 권한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법관임명의 대상에 있어서도 법조일원화를 택하고 있는 영국.미국의 경우와, 법조이원화를 택하는 프랑스 및 대륙법계 국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즉 영국에서는 법관과 변호사는 '통일적인 법률직업' 의 두개의 부분을 의미하는 까닭에 법관은 재야의 우수한 변호사 중에서 임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미국에서도 법관은 변호사나, 법무부장관 등 고위 정부관리, 법학교수, 의회의원 및 주지사 등에서 임명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영.미에서 법조일원화가 가능한 것은 법관임기의 종신제로 인해 법관의 교류 및 승진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변호사단체에 그 평가를 의뢰할 수 있는 것도 미국변호사단체의 성격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이원화를 택하고 있는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법관과 변호사는 엄격히 구별돼 양자의 교류는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단 법관으로 임명되면, 그 내부의 교류 및 승진은 법원조직의 위계질서에 따라서 독자적으로 진행되게 된다.

그리고 법관의 임기가 일정한 기간으로 한정될 경우에는 법관의 재임명 및 승진과 같은 기대적 기득권으로 인해 재야의 법조인인 변호사와의 교류는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 헌법은 대법원장 임명제도를 행정부와 의회가 공동으로 하게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대법원장이 임명권자에 경도될 것을 염려해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헌법이 규정한 제도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지켜나가는 제1차적인 책무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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