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할복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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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역사상 '셋부쿠 (切腹)' 곧 칼로 배를 가르는 행위가 의리를 지키고 명예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관습화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말부터였다.

다이라 (平) 와 미나모토 (源) 의 두 무가 (武家)가 각축을 벌이다가 미나모토의 가마쿠라바쿠후 (鎌倉幕府)가 성립하면서부터의 일이었다.

당시에도 무사들에게 강요된 것은 '충 (忠)' 이었지만 새로운 '막부' 가 들어서면서 영주 (領主) 는 신하들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과감하게 죽을 것을, 배를 갈라 장렬하게 죽을 것을 강요했다.

일본의 무협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그 이후 할복은 일본의 전통적 무사도 (武士道) 의 한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전통민중연극인 가부키 (歌舞伎) 의 대표적 작품인 '주신구라 (忠臣臟)' 는 바로 '충성을 보이기 위한 할복' 이 소재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할복자결한 영주를 위해 47명의 신하가 원수를 갚은 뒤 모두 할복자결한다는 단순한 얘기다.

'주신구라' 는 아직도 일본사람들을 감동시킨다지만 할복은 그 끔찍함 때문에 우리네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이준 (李儁) 열사가 국권회복을 호소하다가 할복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지난 75년 주 (駐) 네덜란드 대사관은 관련자료를 찾아내 할복이 아닌 '단식순절 (斷食殉節)' 이었음을 밝혀냈다.

네덜란드의 한 신문은 이준열사에 대한 일본인의 암살설을 제기한 적도 있는데 그렇게 보면 전통적으로 할복을 미화해 온 일본과 李열사의 할복자결설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은지 의심이 가기도 한다.

일본과는 달리 우리는 전통적으로 삶의 마지막 통과의례인 죽음은 경건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모든 죽음의 모습은 깨끗해야 하기 때문에 시신도 정중하고 청결하게 다루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다.

죽음의 모습이 흉하면 저승길도 편치 않다고 믿는 탓이다.

전쟁이나 사고로 인한 죽음은 흉하고, 자살도 마찬가지다.

할복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3월에는 구속된 전 안기부장이 할복 소동을 벌여 세상을 시끄럽게 하더니 이번에는 축협 중앙회장이 농업협동조합법안 통과에 항의해 국회에서 할복하는 소동을 빚었다.

할복이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죽음으로써 저항해 보이겠다는 뜻이지만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또 다른 방법도 있었음직한데 왜 하필이면 일본사람을 닮으려 하는지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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