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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선생님, 22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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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탤런트 출신으로 연기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홍유진 교수. [김태성 기자]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홍유진(53)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서면 탤런트 이서진씨의 얼굴이 담긴 연극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연기자 출신인 홍 교수가 2000년 연출했던 ‘셰익스피어식 사랑 메소드’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는 방송인 박경림씨와 탤런트 박진희씨 등이 출연했다. 모두 홍 교수가 지도를 했던 후배 연기자들이다.

홍 교수는 탤런트 명세빈·이재은 씨 등에게도 연기를 전수했지만 본인은 정작 20년 넘게 카메라 앞을 비웠다. 그는 1977년 동양방송(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안방극장을 누비다 87년 돌연 미국 뉴욕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연기심리학을 전공해 ‘탤런트 출신 외국 박사 1호’ 타이틀을 얻고 귀국한 뒤엔 동덕여대에서 후배 연기자를 길러왔다. 그런 그가 최근 MBC 드라마 ‘보석비빔밥’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임성한 작가의 신작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로 홍 교수는 연출을 맡은 백호민PD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다. 남자주인공의 어머니인 부잣집 사모님 ‘이태리’ 역할이다. “학생들도 더 잘 가르치고 싶고 연기에 대한 끈도 놓고 싶지 않아 카메라 앞에 다시 서기로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왕 결심을 했으니 제대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기로 했다. 치렁치렁 긴 생머리도 단발로 싹둑 잘랐다. 차분한 평소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코맹맹이 소리도 섞어가며 이미지를 바꿨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처럼 찾아왔다. 경북 문경초등학교에 다니던 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학교를 찾았고, 환영 공연을 준비하면서 ‘무대 체질’인 자신을 발견했던 것. 이를 계기로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해 77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후 300여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정신 없이 달려오다 87년 인생 행로를 바꾸기로 돌연 마음을 먹었다.

“내가 습관적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더군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또 연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을 파고드는 고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미국 순회 공연 중에 연기심리학이라는 분야를 접했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짐을 꾸렸다. “연기라는 게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 일이고, 따라서 연기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게 심리학이라고 느꼈다”는 게 이유다. 그렇게 87년 미국 뉴욕대학교 대학원의 교육연극학과에 입학해 연기심리학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낯선 환경이었기 때문에 모든 게 모험이었지요. 하지만, 제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합니다.”

91년 한국에 돌아온 후엔 교편을 잡았다. 또 연기를 도구 삼아 심리치료를 하는 기관인 ‘한국 연극 치료학회’를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최근엔 가지를 하나 더 쳤다. 나눔과 봉사의 삶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동덕여대에 ‘홍유진 장학금’도 만들었고 성가정입양원 등에서 봉사활동도 한다. 그는 사실 ‘나눔’이라는 말보단 ‘공유’라는 말이 편하다고 했다. “처음부터 내 것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연기자로 다시 돌아온 것도 자신의 재능을 후배들과 나누기 위해서라는 말도 덧붙였다.

“앞으로도 제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저의 경험이며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을 찾으며 살고 싶다는 건 바뀌지 않을 거에요. 연기도, 심리학도 그런 공유의 도구로 삼을 작정입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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