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야당의 목표와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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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가 어제 기자회견을 통해 3金정치 청산과 제2창당을 선언함으로써 여야의 몸집 불리기와 당 쇄신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연초부터 정계 화두 (話頭) 였던 정치개혁 논의가 내각제 개헌 유보 파동을 겪으면서 슬그머니 정계개편론과 3金정치 청산론으로 변질된 이런 정계 기류가 장기화될 조짐이어서 정치개혁의 본말이 전도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야당과 李총재의 입장에서 3金정치 청산을 내세운 건 당연하다.

국민도 3金씨의 기여는 인정하면서도 그 정치행태의 부정적 요소는 청산돼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그 청산론을 두고 여야가 비생산적인 무한투쟁을 벌이거나 청산방법론 제시는 없이 말로만 청산을 주장해서는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 21세기의 정치개혁을 선도하기 위한 대안과 방안을 제시하고 3金정치와는 다른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 야당의 선결과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李총재의 회견을 뜯어보면 기대반 우려반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李총재가 "지역할거주의.패거리정치.보스정치.밀실야합정치의 낡은 3金정치로는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 고 진단, 그 청산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한 점은 야당총재다운 노선의 정립으로 보인다.

특정 자연인에 대한 청산이 아니라 그들의 구태 (舊態)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李총재는 3金정치와 차별화할 수 있는 정치개혁안에 대해선 선언적이고 원론적인 수사로 일관한 듯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는 '새로운 정치' '당개혁과 쇄신의 길' '실용적인 정치' '한국형 실용주의' 등 모호하고 추상적인 용어를 선보였을 뿐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정치개혁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구체적 방안은 앞으로 설치되는 '뉴 밀레니엄 위원회' 의 과제라고 했지만 李총재는 적어도 3金정치와는 어떻게 다른 정치를 보이겠다는 것인지 의지를 밝혔어야 했다.

예컨대 보스정치를 청산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으로 당내 의사결정 및 요직인선의 민주화, 상향식 공천제 등 정당민주화와 돈 덜드는 정당 및 선거제도 방안 등을 제시해 정치개혁 의지를 보이는 게 바람직했다고 본다.

그리고 '제2의 창당' 을 하겠다는 것도 여당의 신당 창당론과는 다른 목표의 제시가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단순한 몸집불리기만으론 권력을 가진 여당과의 경쟁이 버거울 것은 너무 자명하다.

야당은 제도적으로나 행태적으로도 여당보다 더 민주적이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의 지지와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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