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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까지 '호암한국영화축제'…'걸작' 스크린에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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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지금이야 우스갯거리도 안되겠지만, 한때 바람난 교수 부인을 다뤘다 해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영화가 있다.

지난 56년 나온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 이다. 정비석의 신문 연재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는 데, 유교적 윤리관이 팽배하던 당시로서는 '불륜' 을 소재로 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논란거리였다.

'자유부인' 처럼 이제는 '전설' 이 되었거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한 시대별 한국영화들을 집중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12일부터 22일까지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호암 한국영화 축제' 가 그것.

'빛나는 우리 영화, 새로운 발견' 이란 부제를 달고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 영화사를 빛낸 20편을 엄선, 선보이는 자리다.

이번 축제는 회고전 성격이 강한만큼 다채로운 구성을 자랑한다. 유현목.김수용.임권택 등 거장들의 대표작은 물론, 한국 컬트영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기영 감독의 영화와 한여름을 오싹하게 만들 공포물, 시대상을 반영한 사회물, 그리고 단편영화까지 골고루 망라됐다. 축제기간중 단편 모음을 제외하고 한 작품당 2~3차례씩 상영된다.

각 부문별 선정작은 다음과 같다.

▶ '거장들' =한국영화의 오늘을 있게 한 '산증인' 들의 작품 모음. 전쟁과 애욕이 빚어낸 비극을 그린 김수용의 '산불' (67년) 을 비롯, 유현목의 '장마' (79년) , 이두용의 '물레야물레야' (83년) , 임권택의 '서편제' (93년)가 선보인다. 네 작품 모두 한국적 정한의 세계를 휴머니즘에 입각해 그린 사실주의 영화의 백미다. 각별히 주의 깊게 볼 인물은 도금봉 ( '산불' ).황정순 ( '장마' ).문정숙 ( '물레야물레야' ) 등 한때 은막을 주름잡던 여스타들이다.

▶ '한국식 컬트 김기영' =지난해 타계한 김기영 감독의 작품세계 탐구. 60년대부터 기괴한 공포 스릴러에 집착하며 한국영화계의 현대화를 앞당겨온 인물이다. 고 하길종 감독은 그를 "누구보다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며 '영화작가' 란 말에 가장 어울리는 감독" 이라고 평했다. 이번 상영작은 가정부와 작곡가의 밀애를 그린 '하녀' (60년) 를 비롯, '충녀' (72년) '이어도' (77년)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78년) .감상 포인트는 김감독 특유의 표현주의적 영상이다.

▶ '시대의 거울' =영화란 프리즘에 투영된 지난날 우리네 삶의 흔적 따라잡기. '자유부인' 의 춤바람에서부터 '비트' (97년) 의 하릴없는 아웃사이더들이 엮는 일탈까지 다양하다. 60년대 청춘영화의 대명사 '맨발의 청춘' (64년) ,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사회학적 보고서 '영자의 전성시대' (75년) , 80년대 반항과 자유정신의 표상 '고래사냥' (84년) 이 각 시대별 대표주자로 나선다.

▶ '한여름밤의 공포 특급' =:열악한 환경속에서 나름대로 상상력을 키워온 우리 공포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살핀다. 교사체벌 등 학교폭력 문제를 미스터리와 교묘히 접목, 지난해 여고생들 사이에 신드롬을 일으킨 '여고괴담' 을 다시 볼 수 있다.이밖에 '월하의 사미인곡' (85년) '목없는 여살인마' (85년) '천년환생' (96년) 등. '스크림' 등 외국 공포영화에 경도된 요즘 관객들에겐 새삼 신기한 체험이 될 만하다.

▶ '단편영화 특선' =촌철살인의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감독들의 단편선. 선보일 작품은 박기형의 '과대망상' (97년) 을 비롯, 육상효의 '터틀넥 스웨터' (98년) , 박찬욱의 '심판' (99년) .박기형과 육상효는 각각 '여고괴담' 감독과 '장미빛 인생' 시나리오를 통해 이미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해준 신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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