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국가 방재조직 강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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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좋은 정부란 어떤 정부일까.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권.재산권.행복권을 확실히 지켜줄 행정조직과 이를 위한 각종 제도를 강력히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1차 요건일 것이다.

우리 헌법 제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라고 재해예방과 인간다운 생활보장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점에 비춰볼 때 3년에 걸친 경기 북부 물난리를 비롯, 94년 성수대교 참사.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지난번 씨랜드 참사 등은 국가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례다.

특히 이같은 참사가 날 때마다 정부의 대처방법, 언론의 보도태도, 국회의 추궁자세, 전문가의 문제분석과 해결안 등이 판에 박은 듯이 '일회성' 으로 끝나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왔다.

정부는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든 넘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항구적 대책보다 급조한 대책을 그럴듯한 수사 (修辭) 로 얼버무려 왔다.

담당자가 밤을 새워가며 대책을 마련할 때 예산 담당자는 뒷짐지고 있다가 막상 대책안을 집행하고자 예산을 요청하면 '불가 (不可)' 로 일관, 대책안을 발표한 국무총리와 각료들을 번번이 허풍쟁이로 만들어 왔다.

이런 정책집행 과정상의 모순뿐만 아니라 오늘날 국민이 느끼는 더 큰 문제는 국가위기.재난관리정책을 연구.기획.집행해나갈 행정조직이 새 정부 출범 후 정부조직개편에서 없어져 버렸다는 점이다.

94, 95년 재난 후 국무총리가 직접 국가위기.재난관리를 주관하는 범정부적 위기.재난관리조직을 구축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행정자치부 (옛 내무부)에 국가 위기관리 담당으로 민방위국을, 국가 인명재산 구난 (救難).구조 (救助) 담당으로 소방국을, 풍수해.지진 같은 자연재난 관리담당으로 방재국을, 폭발물과 전국 건축토목구조물재난 관리담당으로 재난관리국을 두도록 했었다.

민방위는 북한에서 장관급이 수장인 부 (部) 단위로, 소방은 일본에서 일왕이 명예수장인 청 (廳) 단위로 돼 있다.

또 재난관리는 미국에서 대통령 직속의 청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도 그 중요성을 고려해 당연히 대통령 직속의 청이나 장관급 조직으로 만들었어야 했으나 행정구조 여건상 국 (局) 단위로 조정했었다.

이에 따라 119구조대에 의한 인명구조.구난은 일본 수준에 육박하게 됐고 가스폭발 참사나 대형 건축구조물 붕괴재난은 80% 이상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방재국의 경우 평상시 업무주체가 건설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이기 때문에 자연재난 방재계획을 입안하고 재난발생시 상황대처하는 수준에만 머무르는 등 전반적으로 근본적 대책마련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

총리가 주관하고 독립 '국 (局)' 단위로 운영될 때에도 이런 한계에 부닥쳤는데 총리가 주관체계에서 빠지고 민방위국.방재국.재난관리국을 1개국으로 통폐합시킨 데다 지방 일선조직에서는 '계' 단위로 운영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국가재난관리가 제대로 되길 바라겠는가.

외국에서도 장관급이나 청장급 조직이 겨우 해결하는 일을 우리가 '과 단위' 조직으로 해결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풍수해를 극복할 때 방재전문 공무원이나 소방관.민방위대원보다 군과 경찰을 찾아야 하는 풍토에서 풍수해 위기관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미국 등과 비교하면 잇따른 재난은 '천재 (天災)' 라기보다 차라리 '정부재 (政府災)' 인 것을 정부 당국자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규학 생명문화운동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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