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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땅에 빠진 농심' 수마할퀸 파평면 홍성복씨 부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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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오랜만에 햇살이 비친 4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 - . 그동안 용현초등학교와 고지대 이웃집을 오가며 대피생활을 하다 나흘만에 집으로 돌아온 수재민 홍성복 (洪性福.62).김복례 (金福禮.64.여) 씨 부부는 기가 막혔다.

비가 그치면서 1m50㎝까지 차올랐던 물은 빠졌지만 35평 크기의 집안은 천장까지 온통 진흙범벅으로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막막했기 때문. 진흙바닥에 한동안 주저앉았다가 어쩔 수없이 삽을 들었지만 두어시간이 지나도 흙은 줄어들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들 내외가 사준 침대.장롱 등과 매트리스.냉장고는 못쓰게 됐다.

金씨는 며느리가 시집올 때 가져온 이부자리와 손때 묻은 가재도구들을 걸레로 닦아내다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물이 나오지 않아 청소를 할 수 없고 전기마저 끊겨 보일러도 가동이 안돼 집안 말리는 것은 엄두도 못냈다.

洪씨 부부는 집 근처 3천5백여평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어왔지만 앞으로는 생계를 꾸려갈 일도 막막하다.

논이 온통 물에 잠겨 어느 정도 자란 벼는 자갈과 진흙에 파묻혀 손도 못쓸 지경이 돼버렸다.

올 농사는 물론 내년 농사도 어림없을 정도다.

洪씨는 손수레에 못쓰게 된 가재도구를 싣고 길가에 내다버리면서 "이제 더이상 할 일도 없다" 며 원망스레 하늘만 쳐다보았다.

경기.강원도 일대 수재민들은 물이 빠지면서 날씨가 맑아진 이날 일제히 집으로 돌아가 복구작업에 나섰지만 사정은 대체로 洪씨와 마찬가지다.

수해 나흘만에 돌아온 집은 폐허로 변해 손쓸 엄두도 못내고 있다.

진흙더미와 못쓰게 된 가재도구 등이 뒤엉켜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 어디 하나 온전한 곳이 없다.

분가한 자녀까지 동원, 복구작업에 나선 노정삼 (盧正三.79.농업.연천군 군남면 진상1리) 씨는 완전히 잠겼던 집이 무너질까봐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盧씨의 셋째딸 신영 (信英.42.경기도 용인시) 씨는 "집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1일 달려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며 "타고 온 승용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복구작업을 도울 계획" 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수재민들은 억지로 구한 물로 겨우 청소만 한 뒤 빗물.땀으로 범벅된 악취풍기는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또다시 대피소 신세를 져야 하는 처지다.

김준술.이가영.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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