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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 방북 … ‘경제 원조’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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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추석 연휴인 4일 평양은 중국에서 온 손님맞이로 떠들썩했다. 북·중 수교 60주년 행사 참석차 이날 방북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평양 순안비행장 도착부터 주민 수십만 명이 동원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직접 공항영접에 나섰다. 1970년 4월 김일성 주석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직접 영접한 일이 있지만 이후에는 사례를 찾기 힘든 외교적 파격이다.

공항 트랩을 내려온 중국 총리에게 꽃다발을 건넨 건 북한을 대표하는 인민배우 홍영희(54)였다. 하늘색 한복 차림의 홍영희는 원 총리와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과거 화동들이 나선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극진한 환대였다. 72년 영화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역을 맡으며 스타덤에 오른 홍영희는 북한 화폐에 등장할 정도의 유명 인사다.

북한 중앙TV가 이날 오후 녹화중계한 도착 장면에는 “온가보, 온가보”를 연호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가득 담겨 있다. 공항에도 각양각색의 전통 한복을 입은 북한 주민 1000여 명이 잡혔다. 원 총리는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김영일 총리와 함께 북한 육·해·공군 명예위병대(의장대)를 사열했다. 양측 총리를 함께 태운 승용차 행렬이 공항을 빠져나와 거리로 들어서자 수 십만의 평양시민들이 꽃다발을 흔들면서 “환영! 친선! 환영! 온가보”와 “만세”를 연호하며 환영했다. 개선문 환영행사에서는 남녀 소년단원이 꽃다발과 함께 붉은 머플러를 원 총리의 목에 매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날 오후 평양대극장에서 원 총리와 가극 ‘홍루몽’을 관람했다. 홍루몽은 북한의 피바다가극단이 ‘북·중 친선의 해’를 맞아 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60년대 상연됐던 작품을 ‘재창조’한 것으로, 김 위원장이 직접 공연을 지도했다. 관람에 앞서 원 총리는 김영일 총리와 함께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기도 했다.

이날 평양을 찾은 원 총리의 방북 목적은 표면상 북·중 수교 60주년 행사 참석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원 총리의 이번 평양 회담은 5월 북한의 핵 실험 이후 소원했던 양측 간 관계 복원은 물론 향후 북핵 공조 전략까지 마련할 북핵 국면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선 북한으로선 핵 도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에서 탈피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 이날 김영일 북한 총리가 원 총리와의 회담에서 “비핵화 실현은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양자 및 다자 대화를 통해 비핵화 목표를 실현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국의 체면을 살려줌으로써 향후 중국의 후견인 역할을 보장받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중국의 무상 대북 원조도 북한에 매력적인 대목이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말 대북 원조 재개를 시사했다. 이날 북한과 중국 정부는 만수대의사당에서 ‘경제 원조에 관한 교환 문서’ 등 여러 종류의 협정과 합의문· 의정서·양해문 등에 조인했다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북 설득을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재확인할 수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미 양자 관계가 진전될 경우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은 대북 설득에 공을 들여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가능성에도 무게를 둔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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