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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옆 옛 조계지 건물 다름이 빚은 역동적인 매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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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호 31면

①인천 등록문화재 제248호로 지정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 앞으로 아트플랫폼의 자료관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②위에서 내려다본 아트플랫폼 전경. 왼쪽에 차이나타운 일부가 보인다. 사진 앞줄의 창고 등 건물은 전시와 공연 공간 등이고 뒷줄은 작가의 창작과 거주 공간으로 활용된다. ③옛 일본우선주식회사의 내부 바닥 일부를 유리로 만들어 건물 바닥 아래의 벽돌 구조를 볼 수 있다. ④창고를 개조해 만든 전시장. 신동연 기자

지난달 25일 ‘다시 개항’이라는 개관전으로 문을 연 아트플랫폼은 인천시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중구 해안동 일대에 조성된 복합문화예술매개공간이다. 복합문화예술매개공간은 예술가가 거주하며 창작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시에 창작물의 발표를 위한 전시장·공연장, 그리고 자료실 등 지원시설이 함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일대는 인천항의 배후지로서 1883년 개항 이후 근대문물 유입의 전초기지였던 흔적이 곳곳에 남겨 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20> 인천 ‘아트플랫폼’

‘개항장 지구’라 불리는 이곳은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서구 각국의 조계지였다. 이런 역사는 이국적인 풍경의 조각들을 남겼고 현재의 주거와 상업 등 일상의 풍경이 혼재되어 있다. 아트플랫폼은 개항기의 청나라 조계지 터(현재의 차이나타운)와 마주하며 일본인 조계지였던 곳이 시작되는 곳의 경계에 자리 잡은 일본해운회사의 건물로 지어졌던 두 동의 근대 건축물과 1930~40년대에 지어진 대한통운의 창고 등을 활용해 13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블록으로 재건축되었다. 최근 많은 지자체가 쇠락한 지역을 재생시키는 데 상징성을 가진 근대 건축물과 예술의 창조적인 에너지와 접목하려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인천 아트플랫폼의 개관은 지역 내외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달 27일 오후, 인천아트플랫폼을 방문했다. 택시를 타고 가며 보이는 시내 풍경은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 어느새 붉은 벽돌의 창고며 항구의 시설들이 아트플랫폼에 가까워옴을 알려줬다. 차에서 내려 차이나타운을 바라보는 중앙의 길에 서니 한눈에 모든 건물이 들어왔다. 열성적인 블로거들이 올린 방문기와 개관을 알리는 기사의 사진을 통해 건물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길 끝으로 이어지는 다소 과장된 양식의 한중문화원과 차이나타운의 풍경은 아트플랫폼의 풍경과 마치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한군데 옮겨놓은 듯 이질적이다.

13개 동 하나로 묶어
건물은 중앙의 길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나뉜다. 도로 쪽에는 전시와 공연, 그리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개방적인 성격의 건물 블록이었다. 반대편 건물 블록은 작가의 창작공간과 거주공간이었다. 개별적인 동으로 나뉘면서도 철제의 공중 보행로가 종횡으로 연결돼 군집을 이룬 건물군이 마치 한 건물처럼 복합적인 프로그램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이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도 기존하는 도시의 문맥을 유지하려는 계획가의 의도를 보여준다.

철제로 된 공중 보행로는 13동의 건물 사이 사이에 놓인 하늘이 보이는 좁은 틈과, 옛 골목길과 계단의 흔적이 남은 통로 등 지상의 유기적인 외부공간을 압도해 현재의 스케일에서는 다소 과한 느낌이 있다. 주변을 돌아보고 나서 아트플랫폼을 꼼꼼히 볼 요량으로 전체 개항장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인천공항과 월미도, 그리고 신도시인 송도 이외 지역의 인천에 대해 무지했던 필자는 아트플랫폼과 그 주변 지역을 둘러보는 짧은 탐방으로 인천에 대해 꽤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됐다. 탐방을 안내해준 인천 재능대학교 손장원 교수 덕이다. 손 교수는 인천의 근대 건축물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는 건물의 연혁, 건축가와 건축주의 개인사까지 들려줬다.

다시 제자리인 아트플랫폼으로 돌아와 보니 한중문화원과 아트플랫폼 사이의 드라마틱한 경계가 비로소 보였다. 아트플랫폼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 시작은 이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준비를 통해 구체화되어서인지 아트플랫폼은 완성도 있는 마감과 잘 짜이고 완결된 공간 구조를 가졌다. 허물지 않고 재활용한 네 채의 벽돌 건물과 새로 지어진 붉은 벽돌조의 건물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동과 동 사이의 열리고 닫힌 내·외부 공간의 조합도 짜임새가 있다. 이렇듯 얼마 전까지 주변의 다른 풍경과 비슷했을 아트플랫폼은 이제는 통일된 재료와 프로그램으로 주변과 대비되는 독자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장점이었을 완성도와 완결성이 주변 지역을 돌아보고 나니 오히려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오래된 것과 새것의 시간차, 그리고 중국 절, 성당, 일본식 적산가옥 등 양식의 불균질함과 거기서 비롯한 역동성이야말로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술가들이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의 변방에 물이 고이듯 모이는 것은, 예술가의 한계적인 상황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본성이 그런 거친 토양에 반응하고 그것이 그들의 창작 욕구와 그들의 삶 자체와 만나 새로운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일대의 장소성과 예술가의 작업과 삶의 양태가 만나지 않는다면 예술과 지역의 재생을 접목하는 일은 지속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관전의 제목인 ‘다시 개항’은 이 시점에 딱 맞는 전시인 셈이다.

아트플랫폼은 기존 대지에 있었던 건물 중 다양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 네 채를 그 원형을 부분적으로 살려 재활용하였다. 재건축을 위한 철거과정에서 그 준공연도가 밝혀져 인천시 문화재로 등록된 대흥공사(구 일본우선주식회사)는 현재 자료실로, 사진만으로 그 원형이 알려진 구 군회조점은 교육 및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99년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
이 두 건물은 복원과 보존의 방식으로 접근했다기보다는 보존할 요소를 선택하여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보였다. 구 일본우선주식회사의 내부는 전체적인 내부 구조를 유지하고 천장의 장식적인 목재 몰딩과 바닥 아래 드러난 벽돌 구조물을 유리로 덮어 내려다볼 수 있도록 했다. 자료실에는 천장 마감을 없애서 지붕의 목조 트러스를 드러냈다. 철거과정에서 드러난 푸른색 도장으로 금고의 문을 도색하는 등 이 건물에 축적된 시간의 켜를 부분적으로 드러나도록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희고 깨끗한 마감재로 덮기보다 오랫동안 덧대어진 마감재를 덜어냈다. 이 방식이 이곳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에 접속할 수 있는 창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교육공간이자 전시장이기도 한 구 군회조점의 건물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기록과는 다른 입면으로 변형되었다. 경비실의 뒤로 보이는 원래의 입구 돌 아치와 벽돌의 둥근 줄 눈만이 1902년 지어진 이 건물의 나이를 짐작하게 한다.

근대 건축 유적이라 할 수 있는 앞선 두 건물 이외에도 이곳의 장소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대한통운의 창고를 구조 보강한 건물은 전시장으로, 다세대 건물은 작가의 거주공간으로 각각 활용되고 있었다. 아트플랫폼의 총괄계획(MA)은 건축가 황순우씨가 맡았다. 황씨는 99년 지역 보존을 위한 정책 제안부터 2000년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수행하는 등 이 지역에 대한 논의가 형성되어 아트플랫폼으로 구체적인 결실을 맺는 전 과정에 참여해 왔다. 아트플랫폼의 ▶곳곳에는 오래된 건조물을 낡고 쇠락한 것으로 보고 과감하게 새로운 프로그램에 맞게 재구성할 것인지 ▶철저하게 그 흔적을 추적하여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인지 ▶보존과 활용의 정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건축가와 지역사회의 고민이 드러난다. 황씨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온 도시의 역동성을 인정하고 보존할 요소들을 선별하여 과거 흔적에서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개항장 지구의 미래가치는 보존할 요소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선별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점을 더하고 싶다. 이런 과정은 의미를 잃고 낡은 건조물로 쇠락해 가는 자원들이 비로소 도시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거울이 되고 시민이, 예술의 힘이 장소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도시를 재발견하도록 하는 창의의 원천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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