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역사 실력은] 上. 통일신라때 '삼국사기'를 펴냈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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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초등학생들이 광개토대왕비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우리는 한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역사 교육에는 문제가 없을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불거지면서 우리 역사부터 제대로 알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앙일보가 역사교육연구회와 함께 행한 한국인의 역사 지식.인식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역사 교육의 실태와 문제점, 개선 방안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지난 18일 '한국사 퀴즈' 10문제를 받아본 서울의 한 중견기업 직장인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사람이라면 별 어려움없이 풀 수 있도록 난이도를 조정했으나 '수험생'들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5번 문제의 정답률이 특히 낮았다. 고려시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편찬 시기를 묻는 질문에 직장인 60명 중 절반이 넘는 33명이 '통일신라'를 골랐다. 정답을 맞힌 사람은 27명에 그쳤다. 대학생들의 성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사 대상 52명 가운데 '고려시대'를 고른 이는 28명, 10문제 전체의 평균 득점은 66점으로 집계됐다.

역사교육연구회 서의식(서울산업대) 교수는 "이번 테스트로 국민 전체의 역사 지식을 섣불리 평가할 수 없지만 한국의 대표적 역사서인 '삼국사기'의 편찬 시기를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한국사 퀴즈'와 별도로 본지가 지난 17일 20세 이상의 성인 남녀 8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4%포인트) 응답자의 94%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알고 있었다. 또 75%는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 방안을 한두 번 이상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스스로 '국사 지식'이 부족하다고 말한 사람도 77%에 달했다. 역사에 대한 '갈증'이 큰 데 비해 이를 채워주는 교육, 또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특히 우리 국민은 역사를 시대 흐름이나 국제사회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중 중국이 고구려가 속해 있었다고 주장하는 왕조는 어느 것인가'라는 퀴즈에서 정답 '당나라'를 맞힌 사람은 평균 58%(직장인 52%, 대학생 48%, 고교생 73%)에 그쳤다. 고구려.백제.신라를 세운 주체 세력을 묻는 항목의 정답률도 평균 56%(직장인 42%, 대학생 67%, 고교생 61%)였다.

송상헌(공주교육대) 교수는 "우리의 역사 교육이 주요 사안의 흐름을 가르치기보다 단순 암기에 치중하는 까닭에 고교생→대학생→직장인 등 나이가 들수록 역사 지식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별도로 실시한 성인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역사 교육에 대한 불만도 도드라졌다. 응답자의 90%가 '학교에서 배웠던 국사는 인물과 연대 암기 위주였다'고 답했다. 역사 지식을 얻는 통로가 학교 수업(59%), 소설.만화.드라마(18%), TV.라디오 교양 프로(16%) 등으로 나타난 것을 볼 때 현행 역사교육 시스템은 대폭 '수술'을 받아야 할 듯하다.

이우태(서울시립대) 교수는 "우리 국민의 역사 지식.인식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한 건 전례가 드문 일"이라며 "앞으로 학계나 국가 차원의 폭넓은 조사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시리즈 '下'에선 '국사 모르는 교실, 고구려 빠진 연구실'을 싣습니다.

◇ 특별취재팀=김창호 학술 전문위원.신창운 여론조사 전문위원.박정호.배영대.조민근(이상 문화부).하현옥(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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