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의 '새 판짜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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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여야 3당이 다투어 신당을 창당하거나 정치신인을 영입해 당의 면모를 일신하겠다고 나섰다.

국민회의는 '8월 중 창당결의' 를 공식화했고, 자민련과 한나라당도 경쟁적으로 신인영입에 나서고 있다.

3당은 저마다 전국.개혁정당이라든가 보수세력 결집, 미래지향적 정치 같은 그럴듯한 목표를 자기변신의 지향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또 신당이냐' 는 것이 솔직한 반응인 것같다.

우리 여당사 (史)에서 지도자가 바뀐 이후에도 지속된 정당이 언제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여야 정당은 언제든 참신한 정치신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겠다지만 지난 3월 '젊은 피 수혈론' 이 유행할 때 영입대상으로 거론되던 일부 인사들이 " (정치판에)가면 망가진다" 며 서로 만류했다는 일화를 우리는 기억한다.

이념과 정책이 제대로 기능하면서 신당으로의 전환이나 정치신인 영입에도 뚜렷한 원칙과 기준을 적용하는 정당이라면 거기에 맞는 정치지망생들이 제발로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정상적인 정당의 모습이다.

기본적인 정체성 (正體性) 이 없다 보니 새파란 정치지망생들한테서조차 '정치판은 블랙홀' 이라는 눈총을 받게 된다.

현재 거론되는 여야 영입대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쌀인지 뉘인지 아리송한 인사들이 다수 눈에 띈다.

'정치철새' 로 불려 마땅한 이들도 여럿이다.

그런 만큼 여야의 영입작업도 지금대로라면 새 바람을 일으켜 국민의 정치불신을 가시게 하기에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 걱정인 것은 여권의 신당 창당 추진과 야당의 맞대응 행태에서 고질적인 지역감정.지역분할 구도에 편승하려는 의도마저 느껴진다는 점이다.

상향식 공천 등 당내 민주화를 위한 개혁조치는 외면한 채 선거를 앞두고 으레 보스를 중심으로 하는 파당 (派黨) 이 구색맞추기용으로 마치 보약을 섭취하듯 당 간판을 바꾸고 신인을 영입한다면 정당정치의 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각당이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런 기준에 맞는 사람을 영입해야 한다고 본다.

명망이 좀 있고 당선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하여 보수도 좋다, 혁신도 좋다 하는 식의 잡탕을 만들어선 안될 것이다.

그리고 받아들인 새 인물이 새 역할을 하고 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당운영의 변화도 있어야 한다.

새 인물이 들어와도 전과 마찬가지로 DJ당은 여전히 DJ당이고 JP당은 여전히 JP당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각 정당이 새 모습, 새 인물을 찾는 노력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만 이것이 또다시 국민을 실망시키는 '선거용' 으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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