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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21.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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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92년 문화부의 '특명' 을 받고 한국예술종합학교 (KNUA) 의 산파 역할을 맡은 이강숙 (李康淑) 초대 총장. 서울대 후배인 이건용 (李建鏞) 교수와 서울대 음대를 떠나 예술학교의 개교는 물론 교수 인선 작업을 함께 했다.

李교수는 초대 교학처장을 맡아 궂은 일을 도맡아했다.

'의형제' 처럼 지내는 이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서울대 음대가 을지로 6가에 자리잡고 있던 지난 67년. 李총장 (당시 시간강사) 은 그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석기시대' 로 당선, 소설가로 공식 데뷔한 李교수 (당시 학생) 를 보게 된 것.

李총장은 65년 '사상계' 의 소설 공모에 응모했다가 이청준의 '퇴원' 에 밀려 탈락의 쓴잔을 맛보았으니 '후배' 가 얼마나 대견스러웠을까. 李총장은 즉석에서 李교수가 학생으로 활동하고 있던 음대 연극반의 지도교수를 선뜻 맡아주었다.

음악을 하면서 선후배 사이로 함께 나누었던 문필 취미는 80년대 중반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에서 사제지간으로 발전했다.

또 李총장이 음악평론가로 필봉을 휘두르던 80년대초와 李교수가 이끄는 '제3세대' 가 출범하던 81년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졌으니 평론가와 작곡가로서의 인연도 깊다.

제3세대 멤버였던 황성호 (黃成浩).허영한 (許英翰).유병은 (劉炳垠) 씨 등도 음악원 교수로 일찌감치 영입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모태가 됐던 '제3세대' 가 실천에 비중을 둔 전위부대였다면 '이강숙 사단' 의 이론적 모태가 된 것은 86년 창설된 한국음악학연구회. 김춘미 (金春美) 한국예술연구소 소장을 비롯, 송방송 (宋芳松).백대웅 (白大雄) 전통예술원 교수, 민경찬 (閔庚燦) 음악원 교수, 홍승찬 (洪承讚).우광혁 (禹光赫) 무용원 교수 등이 그 멤버들이다.

이건용 교수는 89년 민족음악연구회를 결성하면서 민예총 등 '운동권' 과도 제휴를 모색해왔다.

이론과 현장의 연계, 예술의 대중화, 장르 허물기 등 예술종합학교가 기존 대학과 차별성을 내세우는 대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다.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기존 대학에서 배척을 받았거나 교수 사회로 편입되기를 두려워했던 전방위 예술가들과의 폭넓은 교우로 이들을 영입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李교수는 시인.조각가.사진작가.희곡.문학평론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 황지우 (黃芝雨) 교수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만수산 드렁칡' 등을 가곡 또는 합창과 관현악으로 만들었다.

최근 황교수가 탈고한 희곡 '5월의 신부 (新婦)' 를 오페라로 작곡, 김석만 연출로 내년 5월 광주항쟁 20돌 기념작으로 초연할 예정.

李교수는 "교수 영입과정에서 기존의 관료주의적인 공무원 사회나 권위적.폐쇄적인 교수 사회로 편입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을 보인 분들이 많았다" 며 "예술종합학교가 안정과 권위 면에서는 남부럽지 않겠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예술가의 자유와 상상력이 위축되어서는 안된다" 고 말한다.

대학의 폐쇄적.권위적 분위기가 싫어 재야에서 평론가로 남아 있었던 영상원장 최민 (崔旻.55) 교수가 대표격. 파리 제1대학 미학과에서 영화이론을 전공, 국내 최초로 영상미학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崔교수는 7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스테디셀러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를 번역했다.

그러면서 '미술작품도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는 당시로서는 다소 진보적인 비평시각을 제시하며 80년대 중반 민중미술 운동이 등장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대학으로부터 냉대를 받아야 했다.

미술원의 안규철 (安奎哲) 교수도 '현실과 발언' 동인이며 영상원의 심광현 (沈光鉉) 교수는 민족미술협의회.민예총에서 잔뼈가 굵은 '운동권 이론가' 출신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론과 실기 (실천) 를 겸비한 인물들이 많다는 게 특징. 철저한 현장 중심의 교육이 가능하다.

영상원만 하더라도 편장완 (片章完.영화이론). 이승무 (李丞茂.영화연출).오명훈 (吳明勳.영상제작). 김소영 (金素榮.영상이론) 교수 등은 모두들 영화제작과 평론.이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평론가로도 활동 중인 金교수는 영화집단 '바리터' 회원 출신으로 서울여성영화제도 기획했다.

연극원 교수들은 연극영화과 출신들은 거의 없고 문리대 어문계열 출신으로 대학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하다가 대학원에서 연극학을 전공했던 인물들이다.

김석만 (金錫滿).김광림 (金光林) 교수는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출가.극작가로 활동했다.

'한씨연대기' '변방에 우짖는 새' 에 이어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를 연극으로 꾸몄다.

연극원 윤정섭 (尹定燮) 교수는 "거창하게 국제경쟁력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연극원 학생들이 제작한 무대미술 작품이 최근 프라하 콰드리엔날레에서 유네스코상을 수상한 것은 예술종합학교의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라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교수의 능력과 양심을 믿는 교수중심의 학교이며 기술 발전보다는 투철한 예술가적 정신을 배양하는 학교" 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들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는 한국의 문화예술계를 이끌어갈 선봉대들이다.

이강숙 총장의 말. "하드웨어.소프트웨어에 이어 21세기에는 콘텐츠웨어가 중요한 시대 아닙니까. 창조적 인간형의 예술가를 양성하는 것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목표입니다. 개개인의 창조적 작업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문화적 기후' 를 바꾸어 나가는 원동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

해가 거듭될수록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입지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럴수록 제도권과 아카데미즘이 누리는 혜택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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