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 밝힌 '80억 CD' 정치인 누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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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창원 (申昌源) 이 검거 당시 갖고 있던 거액은 서울 강남에 사는 유명 정치인의 집에서 인질극을 벌여 빼앗은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유명 정치인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구나 申이 이틀에 걸쳐 남편과 아들을 인질로 잡고 부인에게 외출을 시키면서까지 2억9천만원이란 거금을 강탈했음에도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申은 부산교도소까지 호송되는 과정에서 경찰관들에게 범행 대상이 유명 정치인임을 강하게 암시하면서도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앞으로의 조사과정에서 집주인의 신분이 드러나게 될지도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申의 아파트에서 골프 가방에 담겨진 채로 경찰에 압수된 현금 다발엔 당시 집주인의 신원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있다.

申은 문제의 2억9천만원 가운데 순천에서 동거녀와 지내던 아파트의 계약금과 생활비 등으로 사용하고 남은 1억8천여만원을 강탈 당시 상태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이 돈은 1만원권 지폐가 1천만원 단위로 묶여진 상태였으며 제일.신한.장기신용은행 등 인출된 은행 이름이 새겨진 끈으로 묶여 있다.

1천만원 묶음 속에는 종이 라벨로 묶인 1백만원 다발이 10개씩 들어 있다.

단서는 1백만원을 묶은 종이띠에 찍혀 있는 도장. 각 은행들은 1만원권 1백장으로 1백만원짜리 묶음을 만들 경우 담당 창구 직원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찍는다.

따라서 압수된 돈다발 중 신한은행에서 인출된 1천만원짜리 묶음에는 1백만원당 '美子' 라는 여직원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이 일렬로 찍혀 있으며 장기신용은행으로 추정되는 묶음에는 1백만원당 '현지' 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제일은행 띠로 묶여 있는 1천만원짜리 일곱 묶음에도 마찬가지로 도장이 찍혀 있다.

더구나 '현지' 란 이름의 도장이 찍힌 1천만원짜리 묶음에는 '1999.5.25' 라는 날짜가 함께 찍혀 있어 돈이 인출된 시점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수사진이 해당 은행이나 서울 강남 일대 지점 등을 탐문해 도장의 이름을 가진 직원들을 파악하고 지난 5월 25일을 전후해 수천만원이나 1억원이 넘는 거액을 한꺼번에 인출해간 고객을 추적해 보면 신원 파악이 가능하다.

또 申이 이 유명 인사의 부인을 시켜 집안에 있던 양도성예금증서 (CD) 를 팔아 2억5천만원을 마련해 오도록 했기 때문에 해당 은행측은 그 무렵 거액의 CD를 매도한 사람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申은 강도짓을 저지른 뒤 집을 빠져나오기 직전 자신이 신창원임을 밝히고 신고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단순히 申의 협박 때문이 아니라 신고를 해선 안될 피치못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申이 자신의 범행 대상이 누구인지 언제쯤 털어놓을지 알 수 없지만 거액을 강탈당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집주인이 누구인지는 예상보다 쉽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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