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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부산경제에 정말 필요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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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4백만 부산시민은 지금 모두가 국가와 중앙정부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이는 성숙 이후의 단계에 도달한 70년대의 낡은 산업을 움켜쥐고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밥을 얻어 먹어야 하는 시민들의 진실한 응어리진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마인드 때문에 부산과 중앙정부와의 거리가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는 허탈감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부산의 현실은 최근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정책의 문제점으로 불거져 나온 '삼성자동차'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그리고 '부산을 세계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만들겠다' 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공언한 약속이행의 불확실성에 대한 성급한 판단 때문도 아니다.

삼성자동차의 처리는 국가 산업정책에 의해 판단될 문제며, 특정 지역경제나 특정 재벌기업만을 위해 처리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부산시민이 안타까워하는 관심의 초점은 부산경제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산업과 기업을 찾을 수 없고, 밖으로 내놓을 만한 일자리 조차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부산경제가 벼랑의 끝에 선 것은 IMF충격 때문만도 아니며, 삼성자동차 때문만도 아니다.

부산경제는 70년대 중반 이후 중앙정부의 정책적인 대안 없이 추진해온 정부의 대도시 성장관리정책과 여기에 따른 규제정책으로 새로운 산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박탈당해 왔다.

과거의 모든 정권들은 '지역경제 위기론' 이 일 때마다 이러한 정책틀 내에서 사탕발림같은 기존산업의 단기 지원책을 내놓았으며, 다급한 부산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 먹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과거의 모든 정권들의 시기에도 반복됐고, YS 정권 때도 별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특정지역에 대한 특혜론을 내세워 말문을 막고 정치적으로 다독거리는 방법으로 일관해 왔다는 것이 보다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지금 부산은 YS집권 이후에도 변함없이 전국 대도시 중에 최악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신발.봉제.철강가공.선박수리 등의 70년대 산업으로 지역경제를 꾸리고 있다.

99년 5월 현재 부산경제는 10%에 이르는 전국 최고의 실업률, 전국 평균의 3~4배에 달하는 부도율, 65%에도 못미치는 중소기업 조업률 등으로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 있다.

여기에다 도시의 경제적 경쟁력을 설명해주는 1인당 지역총생산.임금수준 등의 제지표는 7대도시의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부산시민은 70년대 중반의 경제적 여건을 가지고 IMF의 혹독한 시련아래 생존을 위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산경제의 여건은 최근 정부가 제시한 '부산경제 활성화대책' 을 '눈가림' 으로 혹평하고 있는 부산의 여론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배경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지난 12일 이기호 (李起浩) 청와대 경제수석의 부산방문 간담회에서 풀어놓은 활성화대책에는 중앙정부의 진지한 지역경제정책 마인드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삼성자동차 문제로 부산시민 전체가 벌겋게 달아오른 시점을 고려하면 경제수석의 부산방문과 간담회는 차라리 없었던 편이 중앙정부로서는 보다 나은 선택이 됐을 지도 모른다.

정부가 내놓은 조선기자재 육성.신발산업 육성 등의 지원사업은 이미 중소기업 관련기관에서 진행 중인 사업이며, 신항만건설 지원의 경우는 국가인프라 조성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업인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 백색가전부문 부산이전 등은 정부가 주도해야 할 사업이 아닌 것이다.

이미 부산 시민들은 이러한 일시적인 '미봉책' 에 오랜 기간동안 시달려 왔던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 부산은 지역산업구조 전환을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산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산업은 자동차.기계 등과 같은 장치산업이 될 수도 있고, 정보.통신.영상 등과 같은 지식기반산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산의 경우 20여년 동안 새로운 산업을 싹틔울 수 있는 재원, 인프라지원과 같은 정부의 비전있는 정책을 접할 수가 없었으며, 실질적인 여건조성을 위한 규모있는 프로젝트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때늦은 감이 있더라도 정부는 지방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동부산권 테마파크' '부산 멀티미디어폴리스' '부산 첨단과학산업단지' '영상정보산업단지' 등과 같은 프로젝트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하상조 동의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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