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아니겠지, 몽유도원도 9일간 서울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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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조선 시·서·화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는 ‘몽유도원도’가 1996년 국내에 전시된 지 13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일본 덴리대가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 이 작품을 들여오기 위해 외교부까지 나섰다. [덴리대학교도서관 제공]

‘천마도’의 적외선 사진. 실물에서 보이지 않던 천마(天馬)의 머리 부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조 순종이 “명군(名君)은 백성과 함께 즐기었다”며 창경궁 내에 설치한 동물원·식물원과 제실박물관을 일반인에게 개방한 것이 1909년 11월 1일. 그로부터 한국 박물관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100년을 개괄하는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28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전시물 150여 점 중 국보·보물이 55점에 달할 정도로 면면이 화려하다.

◆물 건너 오신 귀한 몸=일본 덴리대가 소장한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띈다. 조선 세종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이 안평대군의 요청을 받아 그린 그림에 안평대군·신숙주·김종서·박팽년 등 당대 문사 21명의 시와 글씨를 엮은 작품이다. 두 개의 두루마리로 엮인 작품은 총 길이 112m에 달한다. 그중 그림이 차지하는 부분은 가로 1m 가량에 불과하다. 안평대군이 수양대군에게 희생된 계유정난(1453년)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작품은 1893년 일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규슈 가고시마 시마즈 가문 소장품이란 기록이 남아 있었다. 몽유도원도는 1939년 일본 국보로 지정됐고, 1950년대 초 매물로 나온 것을 덴리대가 구입했다. 당시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가격을 한국에서는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국내 처음 공개되는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치성광여래왕림도’도 눈여겨 볼 작품이다. 동시대 그림 중 최상급으로 평가 받는 고려불화는 전세계에 160여 점 밖에 남아있지 않다. ‘치성광여래왕림도’는 고려불화 중에서도 보기 드문 작품이다.

◆수장고에서 꺼낸 정조어찰=국내 소장품 중에선 ‘천마총 천마도’(국보 제207호)가 으뜸이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실물은 보존의 어려움 때문에 다음 달 11일까지만 전시된다. 육안으로는 실물보다 실사 사진, 1200만 화소급 카메라로 찍은 적외선 사진이 더 정확해 보인다. 적외선 사진으로 드러난 천마도 머리 부분의 돌기를 두고 ‘기린의 뿔’이라는 해석과 ‘말의 귀’라는 주장이 엇갈리니 주의깊게 살펴보자. 정조가 신하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신한』과 외삼촌 홍낙임에게 보낸 『정조어필』도 나란히 놓였다. 올초 공개돼 화제가 된 것과 다른,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어찰첩을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번 전시 예산은 총 7억 원. 국립 박물관 소장품이 많아 전시 규모에 비해 적게 든 편이지만 유물 수준만 보면 블록버스터급이다. 전시는 한국 박물관 100년사를 따라가도록 구성돼 있다. 배경 지식 없이 보면 중요 유물도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있겠다. 도록에 전시실에 부착된 것 외의 추가 유물 설명이 없어 아쉽다. 무료. 11월 8일까지. 월요일 휴무. 02-2077-9263.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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