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2. 소설 - 김연수'부넝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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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소설의 화자는 항일전쟁, 국민당을 상대로 한 해방전쟁에 이어 조선(한국)전쟁까지 참전했던 중국인 노전사(老戰士). 지금은 연길 서(西)시장에서 사람의 관상을 본다.

점 손님이 한국인 소설가임을 알게 된 노전사는 1951년 2월 중순 강원도 원주 인근 지평리 전투 체험을 들려준다.

중국군 5000명이 전사한 치열한 전투에서 주인공은 중상을 입지만 조선인 여성 구호원으로부터 300g의 피를 수혈받고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곧 전선에서 동떨어진 외진 농가에 구호원과 함께 고립된다. 이틀 동안 죽음같은 잠에 빠졌다 깨어난 두 사람은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탈진상태임에도 아프다고 소리치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서로의 몸을 탐한다. 결국 주인공은 구호원으로부터 1000g의 피를 더 수혈받고 살아남지만 구호원은 끝내 숨진다. 노전사는 소설가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부넝쒀.不能說)' 절절한 얘기를 쓰라고 충고한다.

<'현대문학' 2004년 5월호 발표>

◇ 약력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94년 '작가세계' 문학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 연작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2001년 동서문학상, 2003년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부넝쒀(不能說)'

소설가 김연수씨는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계간 문예지 '파라 21'에 연재 중이다. 덕분에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취재.집필에 매달리고 있는 그는 23일 옌볜에 건너가 있었다.

김씨는 국제전화 통화에서 "똑같은 한국 전쟁을 기록했으면서도 한국의 자료와 중국의 자료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전쟁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자기들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평리 전투에 관한 양측의 기록이 그렇다. 김씨는 "그런 역사의 허점이 '부넝쒀'를 쓰게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역사적인 진실이 여럿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진실은 하나도 없다는 관점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실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은 애초에 첫단추부터 잘못 꿴 일일지도 모른다.

김씨는 "소설이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입장도 의심스럽다"고 고백했다. 그런 의심들을 버무려 김씨는 '부넝쒀'라는 순수한 허구를 만들어냈다. 가령 중국인 전사와 조선인 여성 구호원과의 처절한 관계는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 다만 전선과 동떨어진 중립지대 같은 시.공간이 전장에 실재했다는 자료가 남아 있고, 간호부들이 자신들의 피를 부상자에게 수혈했다는 얘기, 중국군과 조선 여인 사이에 연애 사건이 심심치 않았다는 얘기 등이 전해지고 있다. 결국 '부넝쒀'는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있었을 법한 '역사 속 인간'에 대한 얘기다.

김씨는 "지금까지 역사라는 거대한 이야기 체계의 허구성을 까발리는 작업을 해왔다. '부넝쒀'는 역사에서 인간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방민호씨는 "김연수씨는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 이후 역사라는 의미망 속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을 재현해 왔다. '부넝쒀'도 그런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 "최근 우리 소설에서 타자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품이 종종 눈에 띄는데 그런 경향도 대변한다"고 지적했다. 방씨는 "화자의 내면 회상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소설 말미까지 꾸준히 밀고 간 힘, 유려한 문체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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