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부산민심 폭발…정권 규탄 뜨거운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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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부산역에서 열린 삼성자동차 청산처리 관련 규탄대회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정권 규탄 군중집회여서인지 날씨 만큼이나 열기가 뜨거웠다.

곳곳에 김대중 정권을 규탄하고 삼성자동차를 살리자는 현수막과 만장 50개가 내걸리는 등 87년 '민주화 투쟁' 당시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만 일반 시민의 참여는 예상보다 많지 않은 듯 참석자는 5천여명에 머물렀다.

본 행사는 오후 6시 개회식을 시작으로 경과보고.대회사.김영삼 전 대통령 메시지 낭독.대정부 규탄사 낭독 등의 순으로 1시간20분 가량 진행됐다.

본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부산역에서 3㎞ 거리인 남포동 부산국제영화제 (PIFF) 광장까지 평화적인 가두행진을 벌인 뒤 오후 8시10분쯤 해산했다.

본 행사에 앞서 오후 2시부터 삼성제품 불매운동 서명운동이 시작됐으며 주최측은 이달 30일까지 1백만명을 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규탄사.현수막.피켓 등에는 과거 학생운동권이나 재야단체 유인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자극적인 용어가 많이 눈에 띄었다.

규탄사는 "분노와 증오에 찬 부산시민의 들끊는 민심은 용광로와 같다" 고 현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부산 죽이기의 보복정치를 즉각 중지하라' '누가 삼성차 빅딜을 사주했는지, 부산시민이 유치한 삼성차를 누가 죽였는지 잊지 않겠다' 는 등의 문구가 등장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메시지 낭독을 둘러싸고 주최측인 '시민연대' 와 박종웅 (朴鍾雄) 의원간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민연대측은 " 'YS의 메시지 낭독이 행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는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쳐 메시지를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朴의원측에 요청했다.

그러나 朴의원은 "약속을 뒤집는 것은 DJ식" 이라며 강하게 항의한 뒤 메시지 낭독을 강행했고 시민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주최측은 이날 갖기로 한 삼성그룹 이건희 (李健熙) 회장과 삼성제품 화형식을 전격 취소했다.

진행을 맡은 '부산을 가꾸는 모임' 최정헌 사무국장은 "화형식을 하면 다이옥신이 발생하고 부산경제를 되살려달라고 삼성에 요청하는 부산시민의 마음이 훼손될 수도 있어 화형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화형취소에 찬성하는 박수를 쳤다.

집회에 참석한 일부 협력업체 근로자는 부인.자녀 등 가족을 데리고 나왔고 넥타이를 맨 직장인도 눈에 많이 띄었다.

경찰은 2천여명의 병력을 오후 2시부터 부산역과 남포동 등 시내 중심지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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