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정적 지키는가-울진 소광리 적송 보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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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하늘높이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죽죽 뻗은 소광리 소나무숲 (경북 울진군 서면). 빛내골 40여리 계곡은 장마비로 검붉은 개울물이 도도하게 흐른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숲인가. 넓은 숲은 그저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산을 뒤덮고 있을 뿐이다. 멀리서보면 전봇대 굵기밖에 안돼 보이는 소나무지만 천연 보호림에 들어서보면 아름드리 거목이 하늘을 떠받치듯 곧게 뻗어 있어 그 위용에 그저 놀랄뿐이다.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버들치를 만날 수 있는 빛내골. 그곳에는 태고의 정적이 감돈다. 백병산과 삿갓재 일대 1천6백여㏊에는 2백년 이상된 금강소나무 8만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산림 생태계의 보고로 손꼽힌다.

금강소나무는 곧게 자란다고 해서 강송, 겉이 붉다고 해서 적송, 춘양 (경북 봉화군) 이 적송의 집산지였기 때문에 춘양목이라고도 불리는 조선 소나무의 원형이다. 껍질이 얇고 붉으며 터지거나 비틀림이 없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벌레가 안먹고 잘 썩지도 않아 예로부터 한옥을 짓는데 으뜸으로 쳤다.

"일제시대에는 소화 (昭和) 15년 (1941년) 부터 구마동 (봉화군 소천면) 과 대현 (봉화군 석포면)에서 1백자 (약 30m) 넘는 나무들이 숱하게 베어졌으며 그나마 조금 남았던 나무들도 6.25동란뒤 혼란기를 틈타 군용 화물차로 마구 실어내는 바람에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 " 고 이곳 주민들은 이야기한다.

금강소나무는 경사가 급하면서 토질에 모래기운이 있어 물이 잘 빠지는 토양에서 잘 자란다. 이런 곳은 사람의 발길이 잘 닿는다. 그래서 양질의 소나무는 마구잡이로 잘려 땔감으로 사용됐고 마침내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다 보니 손길이 닿지 않는 절벽이나 바위 등 척박한 땅에서만 자라는 퇴화된 유전 형질의 구불구불한 소나무만 보게 되는 것이다.

현재 천연 보호림 내에는 5백년생 다섯 그루, 2백~3백년생 8만여 그루등 1백여만 그루의 금강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중 계곡끝으로 들어가다 보면 기묘하게 뒤틀리며 5백년의 세월을 지켜온 노송이 지조를 뽐낸다.

2백년생 소나무 한그루 값이 소나타 한대 값이라니 이곳 송림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다.

조선 숙종 6년 (1680년) 황장봉산으로 지정된 소광리 금강소나무 천연보호림에는 황장봉계금표 (黃腸封界禁表) 라는 표지가 산중턱 바위 위에 남아 있다. 국내에서 황장금표가 발견된 곳은 설악산 한계사.치악산.영월 황장골 등 5곳이다.

중국에서는 황제의 관 (棺) 을 가래나무로 만들었고 이를 황장목이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가래나무를 대신한 금강소나무가 황장목으로 불리게 된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그래서 조선조에는 금강소나무가 자라는 곳을 황장산으로 봉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해 왔다.

울진 국유림 관리사무소 남화여 (52) 소장은 "껍질이 붉은 금강소나무는 햇빛이 구름을 벗어날 때마다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데 석양녘에 보는 풍광이 일품" 이라며 "산림자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아직 부족해 우리의 소나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천연보호림을 개방하고 있다. " 고 많이 와서 보고 가기를 권한다.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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