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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코리아’ 충주에서 부활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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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04면

이만중 보끄레 회장은 “충주 패션산업단지가 성공하면 중국과 비슷한 가격에 품질은 더 좋은 제품을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동연 기자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강을 떠나 바다로 간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연어는 죽기 살기의 무한경쟁을 치러야 한다. 바다에서 오랜 방황을 하면서도 연어는 결코 고향을 잊지 않는다. 언젠가 고향의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생애를 마치는 것은 연어의 숙명이다.

패션업체 ‘연어의 귀환’ 이끄는 이만중 보끄레 회장

저임금을 좇아 중국으로 떠났던 국내 패션의류 업체들이 ‘연어의 귀환’처럼 되돌아온다. 중국의 가파른 임금상승과 불합리한 행정·노사관계 등으로 중국 내 생산 여건이 크게 악화된 탓이다. 본사와 가까운 곳에 공장이 있으면 소비자 취향의 변화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품질이나 제품의 이미지에서도 ‘메이드 인 차이나’보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이들은 수도권 규제가 미치지 않는 충북 충주에 새로운 생산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충주시 앙성면 능암리에 27만㎡ 규모로 추진 중인 ‘충주 녹색패션산업단지’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의류 생산기지의 ‘U턴’을 주도하는 인물은 중견 패션업체 보끄레 머천다이징의 이만중(66) 회장이다. 이 회장은 한국패션협회를 통해 충주 패션단지 사업을 업계에 제안, 쌈지·형지어패럴·동광인터내셔날 등 7개 사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7개 사의 연 매출을 모두 합치면 1조원이 넘는다. 이들은 우선 88억5000만원을 공동 출자해 ㈜MIK라는 사업 시행사를 설립했다. MIK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영어 약자로 국내 생산 재개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

현재까지 사업 추진은 순조로워 보인다. MIK는 지난해 7월 사업 대상지의 토지 매입을 완료하고, 올 5월 지방산업단지로 지정해달라는 신청서를 충북도청에 냈다. 현재 환경·교통영향평가 등 산업단지 지정을 위한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패션협회 주상호 상무는 “다음 달께 산업단지 승인이 떨어지면 투자설명회를 열어 20개 내외로 참여 업체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올해 안에 착공해 이르면 내년 말부터 일부 공장에서 제품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MIK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아 사업 진행을 총괄하고 있다. 25일 오전 서울 강동구 길동 보끄레 본사에서 이 회장을 만나 사업 추진 배경과 진행상황 등을 들었다.

생산기지 국내로 ‘U턴’은 대세
-패션업체들이 사실상 국내 생산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겨간 것은 불과 10년 안팎의 일이다. 왜 돌아오나.
“중국 생산의 최대 메리트는 가격 경쟁력이었는데 점점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 지난해 중국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은 무려 44%에 달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오르는 것도 큰 부담이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과거 우리의 경우 물류비를 감안해도 중국 생산이 30% 정도 저렴했다. 이제는 격차가 10% 정도에 불과하다. 그 정도 차이라면 굳이 중국에서 생산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근로자 임금과 위안화 가치가 계속 오르면 조만간 중국과 한국의 생산비는 대등한 수준이 될 것이다.”

-가격 경쟁력이 문제라면 베트남 등 다른 동남아 국가도 있지 않나.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멀어질수록 시장 대응력이 떨어진다. 21세기 패션은 스피드 산업이다. 제품을 기획해 1주일 안에 시장에 공급하지 않으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과거에는 1년 단위로 제품을 기획했기 때문에 생산기간에 여유가 있었다. 이제는 월간 기획도 모자라 주간 기획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해외 생산은 신속한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은 지리적으로 가깝긴 하지만 정치적인 변수에 휘둘려 안정적인 생산이 어렵다.”

-국내 시장만 바라보고 사업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이다. 수출을 위해서도 국내 생산이 유리할 것으로 본다. 미국·유럽연합(EU)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메이드 인 코리아’가 돼야 FTA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일본은 물론 중국 시장에서도 ‘메이드 인 차이나’보다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소비자 인식이 좋다. 일본 패션업계도 우리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벌써 두 팀이나 방한해 패션단지 예정지를 둘러보고 갔다.”

업계 공동으로 2000억 투자 계획
-시장과 가까운 곳에 생산시설이 있어야 한다면 경인지역이 낫지 않나. 충주를 선택한 이유는.
“거리만 본다면 수도권이 좋지만 땅값이 문제였다. 서울에서 이동시간이 1시간 정도로 가까우면서 땅값이 싼 곳을 찾아보니 충주가 보였다. 경기도 이천과 충북 충주는 서로 맞닿아 있는데, 땅값은 이천이 5~6배나 비싸다. 김호복 충주시장이 발 벗고 나서 도와준 덕분에 일이 어렵지 않았다. 공단 위치는 경기도 경계에 가깝다. 부지 매입비는 3.3㎡당 9만원 선이고, 공사비를 포함한 토지 조성비는 3.3㎡당 30만원 선으로 예상한다. 국토해양부 계획대로 2016년까지 충주를 지나는 중부내륙철도가 개통되면 교통이 더욱 편리해질 전망이다.”

-지방 산업단지는 인력 확보가 어렵다고 하던데, 인력 수급 계획은 있나.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지방도시는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현지 주민만으로 어렵다면 가까운 경기도 이천·여주 지역과 강원도 원주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해 인력을 데려올 생각이다. 장애인 인력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협의 중이다. 공단 측에서 기능 교육도 시켜주고 1인당 35만~45만원의 국가 보조금도 지급한다고 한다. 입주업체도 좋고, 장애인 실업 문제도 해결하는 ‘윈-윈(win-win)’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패션단지를 만들어 생산기지를 국내로 돌리자는 제안은 언제 처음 했나. 당시 업계 반응은 어땠나.
“필요성은 몇 년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업계 분들을 만나 이런 얘기를 했더니 대부분 공감하며 관심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제안을 내놓은 것은 2007년이고, 그해 12월 부지 계약을 했다. 지난해 6월 충주시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7월에 MIK를 설립했다. MIK란 이름은 쌈지의 천호균 회장이 아이디어를 내놨는데 모두가 ‘그거 좋다’고 동의했다.”

-산업단지 이름 앞에 ‘녹색’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과거에는 봉제공장 하면 열악한 작업환경부터 떠올렸다. 이번에 추진하는 ‘녹색패션산업단지’는 친환경 복합단지로 차원이 다르다. 일단 염색 같은 공해 유발 업체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녹지와 공원을 충분히 갖추고, 주부 근로자를 위한 영·유아 보육시설도 들어간다. 고령의 숙련 근로자를 위한 전원주택과 문화시설·아웃렛 등도 계획 중이다. 완성되면 산업단지라기보다는 신도시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러면 투자비가 많이 들지 않나. 자금 조달 계획은 어떻게 되나.
“참여 업체들이 공동으로 부담한다. 현재까지 부지 매입비와 인허가를 위한 설계비 등으로 110억원 정도가 들어갔다. 다음달 MIK에 25억원 정도 증자를 계획 중이다. 총투자비는 2000억원가량으로 예상한다. 패션협회 사업설명회를 통해 입주 희망 업체가 늘어나면 추가로 부지를 매입해 사업 규모를 확대할 생각이다.”

-산업단지가 완공되면 중국 생산 물량을 전량 국내로 돌릴 수 있나.
“개별 업체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를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저가 시장과 중고가 시장을 구분해서 접근하려 한다. 중고가 시장은 국내 생산으로 전환하고, 저가 시장은 지금처럼 중국에서 생산하는 체제를 구상 중이다. 이렇게 하면 해외 생산 비중은 20%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중국 생산 비중이 축소되면 중국 현지법인은 어떻게 되나.
“현재도 현지법인이 직접 공장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대신 협력업체를 통해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OEM)으로 생산하고 있다. 다른 패션업체도 대개 비슷하다. 중국에 있는 한국계 협력업체에 대해선 충주 패션단지에 입주를 권유하고 있다. 공장을 하는 분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느끼고 있다.”

“내 주식 직원들에게 나눠줄 것”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사회공헌이라는 독특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젊을 때는 돈 버는 것이 최고라고 알았는데, 나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 물론 기업이 발전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돈은 어디까지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기업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사회에 얼마나 공헌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큰 회사가 아니어서 한계는 있지만 지역의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틈나는 대로 사회복지단체에 기부도 하고 있다. 순수성이 훼손될 수 있어 대외 홍보는 하지 않는다. 올 3월 중국 쓰촨성 대지진 피해 지역에 초등학교를 지어줬더니 현지 총영사관에서 ‘한국 이미지 개선에 기여했다’며 크게 기뻐하더라.”

-2세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어릴 때부터 확실히 얘기해서 그런지 자식들도 전혀 불만이 없다. 부모로서 학비와 결혼비용까지는 도와주지만 그 이상은 각자 알아서 인생을 개척하라고 했다. 부모에게서 큰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결국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여럿 봤다. 부모가 현명치 못했던 탓이다.”

-그럼 누구에게 회사 경영을 맡길 계획인가.
“2007년 경영전략본부장이던 이창구 상무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넘겨주고, 나는 회장으로 물러앉았다. 내가 나이를 더 먹어 언젠가 회사를 나가면 여기서 성장한 우수한 인재들이 회사를 경영하도록 하고 싶다. 내가 가진 주식도 직원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시기는 증시에 상장할 무렵이 될 것 같다. 현재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윤리경영에 대한 소신도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정도에 어긋나는 것은 싹을 잘라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살아왔다. 정도를 걷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윤리경영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일을 하면서 업무 외적으로 신경 쓰는 것도 싫었다. 특히 직원들에게 협력업체를 존중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청업체란 말은 절대로 쓰지 못하게 하고, ‘갑’이 아니라 ‘을’의 자세로 대하도록 한다. 진정한 협력은 ‘갑을’ 관계
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만중 회장은
1943년 경기도 양주생. 보성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67년 코오롱상사에 들어갔다. 77년 코오롱의 기성복 시장 진출을 주도하며 초대 숙녀복 그룹장을 맡았다. 코오롱 패션사업본부장 시절에는 사장 결재 없이 모든 업무를 처리할 정도로 절대적 신임과 권한을 부여받았다. 91년 패션의류업체 보끄레 머천다이징을 설립하고, 이듬해 여성 캐주얼 브랜드 ‘온&온’을 론칭했다. 이후 ‘올리브 데 올리브’ ‘더블유닷’ ‘스테이지89’ 등의 여성복 브랜드를 잇따라 내놓았다. 99년 중국에 진출했으며, 현재 중국 전역에 129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3년 석탑산업훈장과 서울패션인상을 받았다. 보끄레는 지난해 중국 현지법인을 포함, 매출 1059억원(연결 재무제표 기준)에 64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직원 수는 한국 400명, 중국 65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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