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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위해 활자 키우고, 임산부 위해 책 택배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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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22면

밤에도 책을 볼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늘고 있다. 사진은 23일 밤 서울 동대문구정보화 도서관의 열람실이다. 신동연 기자

사실 이전에 도서관을 찾은 것도 책 때문은 아니었다. 바리바리 싸 들고 간 수험서나 전공서적 같은 ‘내 책’을 보기 위한 독서실·공부방으로 도서관을 애용했을 따름이다. 수만, 수십만 권의 책을 모아둔 도서관으로서는 속상할 노릇이다. 더구나 이용자들에게 한 걸음 다가서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것이 요즘의 도서관이다. ‘추억의 장소’로만 도서관을 떠올리는 이들이 새롭게 여길 요즘 도서관의 각종 서비스를 소개한다.

도서관이 좋다 3 공공도서관들 '찾아가는 서비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야관 개관이다. 2006년 시범적으로 시작돼 현재는 전국 600여 공공도서관의 3분의 1가량인 200여 곳이 시행중이다. 도서관 서가의 책을 자유로이 볼 수 있는 자료열람실은 오후 10시까지, 도서관 소장자료와 관계없이 이용하는 일반열람실은 대개 오후 11시까지 연다. 직장인도 퇴근길에 도서관에서 책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대출·반납을 위해 종종걸음을 치지 않아도 된다. 요즘 도서관들이 앞다퉈 마련하는 각종 문화강좌 역시 야간에 열리는 것이 적지 않다. 예컨대 서울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하는 '강유원의 고전읽기'강좌가 큰 인기다. 『일리아스』『군주론』『법의 정신』등 만만치 않은 고전이 대상인데도, 매달 신청접수가 마감되고 대기신청까지 이어진다. 이 도서관은 강좌가 열리는 동안 참석자가 데려온 어린이를 돌봐주는 일도 한다.

큰 활자책과 일반 활자책의 활자 크기 비교.

도서관을 직접 찾기 힘든 이들에게 집으로 책을 배달해주는 곳도 있다. 서울에서는 정독도서관이 대표적이다. 장애인·만 65세 이상 노인은 원하는 책을 신청해 택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무료고 서울 전 지역이 대상이다. 다만 처음에는 신분증을 가지고 도서관에 가서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반납에 드는 택배비도 도서관이 부담한다. 정독도서관이 이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2004년에는 50권에 불과하던 이용 규모가 올해는 이미 2000권이 넘었다. 일반인도 택배비를 직접 부담하면, 같은 방식으로 대출이 가능하다. 경기도 역시 장애인을 대상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까운 공공도서관과 경기도사이버도서관(www.golibrary.go.kr)에 모두 회원으로 가입한 뒤 이용이 가능하다.

일반인도 비용 부담하면 택배 해줘
경기도는 최근 영·유아를 둔 어머니들에게도 이런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확대했다. 수원·안양·파주 등 5개 시에서 임신 8개월~출산 후 12개월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3개월간 무료택배대출을 실시했다. "반응이 좋아 점차 다른 지역으로 넓혀갈 것"이라는 게 경기도 관계자의 말이다.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북스타트'운동 역시 어린 시절부터 책·도서관과 가까워지게 하려는 노력이다. 지자체와 연계해 영·유아가 있는 가정에 그림책 2권 등이 포함된 꾸러미를 전해주는 활동이다. 올해의 경우 전국 230여 시·군·구 가운데 80여 곳이 이 같은 행사를 지역 내 도서관·보건소를 거점으로 열었다.

노인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에도 도서관이 나서고 있다. 보기 편하도록 여느 책보다 활자를 키운 책을 제작한 충북의 제천시립도서관이 그 예다. 이 도서관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소설·고전·노인건강 등 7종의 도서를 큰 활자책으로 만들었다. 도서관에 비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 내 노인시설에 배포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에 자극받아 최근에는 문광부·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가세했다. 일정 부수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최근 20종의 큰 활자책 출간을 지원했다. 큰 활자책은 노령화사회에 일찌감치 진입한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출판 형태다. 문광부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 김명희 팀장은 "노인시설에 배포하는 한편 시중 대형서점에 관련 코너를 만드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도서관 서비스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어떤 책을,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느냐다. 요즘은 가까운 도서관에 이용자가 찾는 책이 없으면, 도서관끼리 책을 빌려주고 빌려받는 상호대차서비스가 마련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책바다'(www.nl.go.kr/nill)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주관으로 상호대차서비스를 지난해 전국적으로 도입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전국의 책을 모으면 바다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책바다에는 현재 공공도서관 약 400곳, 대학도서관 100여 곳 등 전국 500여 도서관이 참여하고 있다.

제주도 도서관의 책을 서울시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이 일단은 구축된 것이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올들어 책바다를 통해 신청된 자료 3400여 건 중 이용자에게 제공된 자료는 1770여 건(제공률 52%). 이용자가 도중에 신청 취소한 자료를 제외하면 제공률은 72%로 높아지지만, 그래도 10명 중 3명은 원하는 책을 빌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해당 책을 지닌 도서관에서 다른 이용자가 대출 중이거나 분실된 경우 등 이유는 여러 가지다.

또 책바다는 가까운 도서관에서 직접 책을 빌리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책바다 홈페이지에 신청한 책을 받기까지는 해당 책을 지닌 도서관의 대출승인, 도서관 사이의 택배 등 절차가 여럿이다. 이용자가 책을 받아볼 가까운 도서관과 책바다 홈페이지에 모두 회원 등록을 해야 하고, 대출승인 이후 이용자가 택배비용을 결제하는 과정도 있다. 왕복 택배비가 공공도서관 자료는 4500원, 대학도서관 자료는 5000원이다.

우정사업본부와 협약을 맺어 일반적인 택배보다는 싸지만, 제공 도서관에 따라 자료의 종별로 택배비가 늘어날 수 있는 점 등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도서관협회 이용훈 부장은 "이용자가 원하는 바의 95%는 각 도서관이 해결하고, 나머지 5%를 보완하는 것이 상호대차의 역할"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이 찾는 전문자료·논문이나 절판본·고서 등은 몰라도, 여느 이용자가 찾는 자료는 기본적으로 도서관마다 갖추려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서관에 세 번은 가야 장점 알게 돼"
일반적인 자료를 찾는 이용자에게는 좀 더 편리한 방식이 있다. 지역별로 도서관이 통합해 책을 빌려주는 서비스다. 부산의 경우 지역 내 공공도서관 중 11곳이 이 같은 통합대출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한 곳에만 회원으로 가입하면 다른 도서관의 책도 빌릴 수 있다. 반납 역시 해당 도서관 중 어디에나 가능하다. 경남 김해시는 이 같은 서비스를 공공도서관은 물론 동네 작은도서관 20여 곳까지 한데 묶어 시행하고 있다. 이런 통합서비스가 널리 퍼지려면 도서관의 회원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과 인력·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도서관 사이에 책을 실어나르는 전담 차량·직원을 두는 것이 그런 예다.

최근에는 지하철역에서 24시간 책을 빌려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문광부의 지원으로 서울 은평구의 은평구립도서관·증산정보도서관에서 시범실시하고 있다. 두 도서관 이용자들은 사전에 대출신청을 한 책을 3호선 녹번역·구파발역,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등에서 무인도서대출반납기를 통해 찾아갈 수 있다. 반납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동구의 강동구립해공도서관은 자체적으로 5·8호선 환승역인 천호역에서 이 같은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문광부는 예산 등의 문제로 다른 지역에 확산은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다른 지역 이용자들에게는 '맛보기'인 셈이지만, 도서관의 서비스가 어떻게 시간·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짐작하는 데는 충분하다. 한국도서관협회 이용훈 부장은 "가까운 도서관에 처음 가보고 실망할지 몰라도, 적어도 세 번은 도서관에 가보라"고 말했다. 갈수록 도서관에서 이용할 부분이 눈에 들어오고, 나아가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도서관에 요구할 바를 알게 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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