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비평] 영화 '이재수의 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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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이재수의 난' 은 내겐 물음표 투성이 영화다. 설득도 되지 않았고 감동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캐릭터와 사건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랑도 사랑스럽지 않거니와 이별도 애틋하지 않고, 분노도 화나지 않았다.

장두가 된 이재수의 표정은 비장하다기보다 의아했을 따름이고 당연히 비극적인 결말도 슬프지 않았다. 웃을 수도 울 수도, 그렇다고 담담할 수도 없는 영화. 시대 상황이란 혹은 역사란 것이 배달되지 않은 화물칸 소화물처럼 그저 빽빽하게 쌓여만 있는 영화. 정말이지 보는 재미가 없었다.

역사의 숙취? 글쎄 모를 일이다. 역량 있는 감독들이 왜 우리의 지난 역사와 대면할 때면 언제나 허망에 빠지는지. '개벽' '태백산맥' '꽃잎' '전태일' '아름다운 시절' 등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 영화 계보 (?) 의 반복되는 병세에 대해 사실 난 이런 의문을 가졌지만 좀 방심한 상태였다. 그저 의욕과잉이라든가 재해석에 실패한 정도로 여겼을 따름이다.

그러나 박광수 감독이 오래 벼린 영화 '이재수의 난' 을 보면서 어쩌면 이런 문제들이 단순히 테마의 소화 여부에 국한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더 깊고 거대한 문제와 연관된 건 아닐까.

예컨대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시공간적 감각이 역사와 단절된 것은 아닌지, 역사와 일상을 분리시켜 인식하는 건 아닌지, 나아가 심미안과 지성이 그렇게 고립되어 있어 자연히 오늘의 현실에 힘도 매력도 없는 영화적 발언을 하는 것은 아닌지….

감독의 '오랜 집념' 의 결과가 이렇듯 급조된 가건물 마냥 건조하고 황량하게 돼버린 세밀한 그 까닭을 굳이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여기엔 삶의 육신, 인간의 골상학이 없다. 비틀거리며 시대 속으로 걸어들어가 산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 역사로부터 지금 이곳으로 탈역사의 문제의식을 껴안고 소리치며 달려나오는 인간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관객에게 해석의 열쇠를 넘겼다는 표현은 정말이지 수사에 불과하다. 영화를 동정하는 것이며 관객에게 선처를 구하는 비굴한 태도인 것이다.

김정룡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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