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TF팀 만들라” MB 지시 열 달 만에 ‘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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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2010년 G20 금융정상회의 유치를 위해 실질적인 준비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워싱턴 1차 회의가 끝난 직후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귀국 직후 G20 회의 유치를 위한 TF팀 구성을 지시했다. 사공일 당시 대통령 경제특보에게 올 1월 ‘G20 정상회의 기획조정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겼다. 사공 위원장은 이때부터 전 세계를 돌며 한국 개최를 설득하는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8개월 만에 결국 G20 유치를 현실화하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G20 유치엔 지난 1, 2차 금융정상회의 등에서 보여준 한국의 의욕적인 활동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이 지난해 워싱턴 1차 회의 때 “무역과 투자와 관련한 새로운 장벽을 만들지 말자”며 제안했던 ‘동결선언(Standstill)’은 정상선언문에 그대로 채택됐다. 또 이 동결선언은 그간 G20 회의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보호무역 저지’ 분위기 조성의 일관된 지침으로 활용됐다. 이 대통령이 세계 유력지들과의 인터뷰나 기고를 통해 G20 체제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표시한 것도 든든한 배경이 됐다. 이를 두고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 개최가 그냥 하늘에서 굴러 떨어진 게 아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G20 유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아시아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2차 회의(4월)를 유치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2차 회의는 런던으로 정해졌고, 일본은 9월 3차 회의라도 개최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당시 낮은 지지율로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던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리더십으로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에 G20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런던 한·일 정상회담 등에서 일본의 유치에 지지를 표명했다.

이런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것은 3차 회의 유치를 놓고 일본과 경합했던 호주였다.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는 “차라리 미국에서 한번 더 열고, 그 다음엔 호주와 일본이 아닌 제3의 지역에서 열자”며 한국을 지목했다. 러드 총리의 제안에 각국 정상이 호응했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차 피츠버그 회의 뒤 2010년에는 한국에서 회의를 여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그때부터 G20 참여국들 사이에 ‘2010년 한국 개최’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 유치에 미국이 가장 큰 힘이 됐고, 영국·프랑스·일본 등 지분을 가진 유력 국가들이 뒤를 받쳐 줬다”고 말했다. 특히 2차나 3차 회의를 유치하려 노력했을 당시 이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던 일본은 좋으나 싫으나 한국 유치를 지원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국제경제계 마당발’ 사공 위원장의 공적·사적인 인맥도 풀 가동됐다. 백악관 경제자문위 위원장인 래리 서머스를 세 차례나 만나는 등 영국·프랑스 정상들의 핵심 경제참모들과 수시로 조율해 왔다. 이 대통령도 피츠버그 정상회의 직전까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러드 호주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며 유치작전을 진두지휘했다는 후문이다.

한국에 앞서 캐나다가 4차 회의(내년 6월)를 먼저 개최하게 된 것은 각국 정상의 바쁜 스케줄 때문이다. 정상들의 동선을 줄일 수 있도록 이미 G8(주요 8개국) 회의가 잡혀 있는 캐나다에서 먼저 회의를 한 차례 열기로 방향이 잡혔다.

피츠버그=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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