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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아이

홍콩의 한국 광고 “희망을 팝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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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홍콩 섬 한 중앙에 대형 광고판이 하나 있다. 두 빌딩을 이은 옥상에 설치돼 있는데 길이가 115m에 높이는 10m로 홍콩에서 가장 크다. 홍콩 판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고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 이 광고판은 삼성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데 섬 건너편에서 야경을 즐기는 한국 관광객들이 가끔씩 큰 소리를 내며 목에 힘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24일 밤 섬 건너편 주룽반도 한 호텔에서 이 광고판 점등식이 있었다. 고정된 광고판을 LED 전광판으로 바꿔 새로운 개념의 광고를 선보이기 위한 행사였다. 이 자리에 뜻밖에 3명의 홍콩인이 등장했다.

열 살 소녀 초이삼이. 그는 선천성 담관폐쇄증을 가진 아이였다.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이모가 간의 절반을 떼어줘 새 생명을 찾았다. 소녀가 말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요. 전 다시 찾은 생명을 남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20대 청년 황룽신. 그는 중학생 때 이미 마약 중독자였다. 5년 전에는 마약 은닉 혐의로 징역도 살았다. 작심하고 공부해 대학을 졸업해 회계사가 됐다. 그러나 사회는 그의 전력을 들춰내며 냉대했다. 그래도 그는 용기를 잃지 않고 실력을 쌓았다. 지금 그는 홍콩에서 잘나가는 회계사다. 그가 말했다. “본분을 다하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걸 알았다.”

풍잉치. 중학 1학년 때 다리 골절 수술 후 세균에 감염됐다. 두 다리를 잃었고 그때부터 휠체어는 그의 발이었다. 펜싱을 시작한 건 자신의 의지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금까지 장애인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를 땄다. 그는 지금 홍콩 최고의 스타 검객이다. 그가 말했다. “좌절해도 실패해도 ‘왜’라고 묻지 않았다. 도전하고 전진만 했다.”

이들이 행사장에서 가슴 찡한 얘기를 풀어내는 동안 전광판엔 그들의 소망과 메시지가 그대로 실렸다. 호텔 바로 앞 바닷가에서 야경을 구경하던 수만 명 관광객들의 눈은 전광판으로 집중됐다. TV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광고판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홍콩 연인들의 사랑고백도 전달하고 출근 시간에는 직장인들을 위해 표준시계 역할도 할 예정이다. 10월 1일 중국 국경일에는 홍콩인들의 다양한 소망이 광고판을 통해 전달된다. 이쯤 되면 광고판이 아닌 홍콩인들의 소통의 장이다. 24시간 회사 광고를 해도 모자랄 광고판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제일기획 남상민 광고기획 마스터의 말이다. “고정된 광고판이 움직이는 LED 전광판으로 바뀌면서 광고 개념의 변화가 필요했다. 단순 전달과 홍보를 넘어 현지인들의 소망을 담아보고 싶었다.” 소비자들의 눈이 아닌 마음속에 광고를 하고 싶었다는 거다. 물론 이 같은 파격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이날 행사에 참가했던 풍잉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광고판이 어려운 사람들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해외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최형규 홍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