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이 사라졌는데 기업 투자할 맘 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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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정문술 미래산업 전 회장은 "정부가 경제를 재단하려는 자세는 잘못이며,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에 나서지 않는 것은 신바람이 실종된 때문"이라고 말했다.

벤처업계의 대부로 꼽히는 정문술(66) 미래산업 전 회장이 현 경제상황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최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의 인터뷰에서다.

"정부가 경제를 이리저리 재단하려는 자세는 잘못이다. 경제 주체들의 자율성을 높여줘야 한다. 경제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이익이 있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정부가 몽둥이를 들고 막아도 기업인들은 돈이 되는 일을 한다."

그는 이어 "최근 들어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에 나서지 않는 것은 경기가 가라앉은 이유도 있지만 기업인의 신바람이 실종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정 전 회장은 200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자신이 300억원을 기증해 지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빌딩의 준공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대외 활동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기자와 만나 터놓고 말 문을 연 것은 은퇴 후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의 경영권도 하나의 권력이어서 기업인의 원초적인 소유욕을 꺾어선 안된다. 여기(경영권)에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덤비는 사람들이 많다. 노조가 경영 참여를 주장하고 이익의 쓰임새에 대해 간여하는 것은 기업가의 고유 영역을 넘어서는 행위다." 최근 일고 있는 노조의 경영권 참여 요구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다.

정 전 회장은 국내 산업구조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예전에는 선진제품만 국산화하면 돈을 벌 수 있었으나 이제 그런 방식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남보다 한발 먼저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이 나라 경제를 튼튼히 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한 일화도 소개했다. 경영에서 물러난 뒤 한 벤처업체의 사장이 정 전 회장을 찾아와 조언을 구하기에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새로운 기술개발에만 매진하라고 일러줬는데도 기술개발을 등한시해 결국 망했다는 것. 그 벤처기업은 한때 시가총액이 수천억원에 이르던 상장 업체였다.

"기업가들도 스스로 본보기가 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투명경영을 하고 근로자와 함께 회사를 키운다는 마음을 가지면 근로자들도 따라온다." 이는 장 전 회장의 기업 경영관이기도 하다. 그 역시 "회사를 세우면서 언젠가 유능한 창업 멤버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고 대주주로만 남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현재 은퇴 후 회사 사정을 물어보거나 이래라 저래라 안한다는 것.

최근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을 맡은 배경을 묻자 그는 "미래산업의 기업공개 당시 동원증권 부사장으로 있던 김정태 행장의 지원을 받았고 김 행장의 권유로 사외이사를 맡게 됐다"며 "이사 중 나이가 가장 많아 의장직까지 맡게 됐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대해서도 싫은 소리를 했다. "금융권이 대출하는 데 너무 몸을 사리고 있다. 기술과 경영자의 신용을 보고 돈을 꿔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리대금업'과 다를 것이 없다."

그는 "벤처기업은 여전히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벤처와 중소기업만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은 경영 은퇴 후 벤처농업대학을 만들어 '엘리트 농가'를 키우고 있다. 최근 자신의 경영철학을 담은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이란 책도 출간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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