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한 통씩만 팔아도 13억 개? … 이젠 어림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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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중국내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차(茶)문화가 발달한 광둥성에서 녹차향을 가미한 커피를 내놓는 등 다양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진은 상하이 예원(豫園) 인근에서 영업중인 스타벅스 매장. [최승식 기자]

變 <변할 변> 한·중 경협은 수교 이전 홍콩을 통한 간접무역에서 1992년 수교 이후엔 한국 제조업체의 대(對) 중국 직접투자로 바뀌었다. 중국인 소득이 부쩍 높아진 지금은 중국 내수시장 진출이 중국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변화하는 한·중 경협 패러다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중국 말고 대안이 있습니까? 해결책을 찾아야 할 곳은 결국 중국입니다.” 대만 IT 전문기업인 위스트론(緯創資通)사 린푸첸(林福謙) 실장의 말이다. 컴퓨터 메이커 에이서에서 분사한 위스트론은 정보통신 분야 세계 8위 기업. 이 회사 역시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수출여건 악화 등으로 대륙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길 생각은 없단다. 오히려 중국에서 승부할 생각이다. 목표는 중국 내수시장. 린 실장은 “상하이의 임금 상승은 곧 소비력 증가를 의미한다”며 “변화된 경영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한 도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위스트론의 사례는 세계 기업이 중국 내수시장으로 달려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비즈니스는 이제 ‘얼마나 싼값에 생산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얼마나 많이 파느냐’의 게임이 됐다. 그렇다고 그 시장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세계 어느 지역보다 치밀한 연구와 전략을 필요로 하는 곳이 바로 중국 시장이다.

이철희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원장은 성공의 첫 요소로 ‘현지화’를 꼽는다. 현지 직원을 키워, 그들을 비즈니스의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중국 로컬 기업들의 임금 수준이 높아지면서 외국 기업을 찾는 인재들이 줄어들고 있다”며 “충분한 승진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유능한 인재를 뺏기고 현지화의 길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본사 파견 주재원을 가급적 중국에서 귀국시킨다’는 프랑스 알카텔의 인사 정책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 다른 성공 키워드는 유통망이다. 박근태 CJ 중국본사 대표는 ‘적과 동침’을 해서라도 유통망을 뚫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합작파트너에게 당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독자 방식 또는 51%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고 믿는 기업이 많다”며 “중국의 특성상 51%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분의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중국 사업을 위해 중국 측 파트너에게 줄 것은 과감하게 줘야 한다는 얘기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베이징자동차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기에 빠르게 시장을 파고들 수 있었다. 다른 요소는 디테일이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밀하면서도 섬세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인에게 껌 한 통씩만 팔아도 13억 개나 된다’는 식의 막연한 생각은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한진 KOTRA 베이징무역관 차장은 “시장이 아무리 커도 내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지역별·산업별 시장구조에 맞는 세분화된 시장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중국 진출기업 간 제휴도 필요하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각개전투식으로 중국사업을 추진해왔다. 이 같은 독불장군식 접근으로는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진출해 있는 ‘격투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중국 주방을 빠르게 침투하고 있는 밀폐용기 전문업체인 락앤락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회사는 상하이에 진출한 홈쇼핑 전문업체인 동방CJ와 제휴, 홈쇼핑 판매를 통해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동방CJ 역시 락앤락 제품 판매로 상하이 지역 주부들을 TV 홈쇼핑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우리 기업은 지금 중국에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로컬 기업의 기술 추격을 따돌려야 하고, 선진 기업이 장악한 시장을 빼앗아야 하는 부담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빨리 달리기’가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잘 달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시기다. 중국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바꾸라는 얘기다.

표민찬 서울시립대 교수 minpyo@gmail.com,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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