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억 달러 LNG 사업, 페루 대통령이 돕겠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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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8일 중앙일보 편집국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 자원외교의 현황과 과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시래 중앙일보 산업경제 데스크, 김성훈 한국석유공사 부사장, 강남훈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원전 정책관, 김신종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구자영 SK에너지 사장. 이들은 정부·기업뿐 아니라 정치권도 해외자원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종근 기자]

“중국은 해외자원 개발을 국가 차원에서 뛰고 있는데 한국은 개별기업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특사로 구자영 SK에너지 사장, 김신종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등이 함께한 ‘자원외교사절단’은 지난달 8~17일 페루·볼리비아·브라질을 방문해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고 온 뒤 이같이 입을 모았다. 물론 이번 자원외교사절단 성과로 SK에너지가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으로부터 “현지에서 추진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이 차질 없게 진행되도록 도와주겠다”는 공개적인 약속을 받아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도 볼리비아 국영 광업공사인 코미볼과 리튬광구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 양해각서(MOU)를 주고받았다. 리튬은 2차 전지의 원료로 볼리비아에 세계 매장량의 3분의 1이 묻혀있지만 아직 개발이 안 됐다. 협력이 결실을 보면 우리나라는 삼성SDI·LG화학 등 2차 전지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리튬 대부분(지난해 기준 6억6000만 달러어치)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당시 현지를 방문했던 업체 대표들은 “기업들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자원외교사절단으로 참여한 업체 대표들과 우리나라 자원외교의 현실과 과제를 들어봤다. 좌담회는 18일 중앙일보 편집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회=해외 자원확보를 위해 남미 3개국을 방문한 성과는 뭔가.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우리 회사는 페루 역사상 가장 큰 사업인 38억 달러짜리 LNG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밀림지역에서 나오는 가스를 안전하게 LNG 공장까지 옮겨야 한다. 페루 대통령이 이걸 보장해 줬다.

▶김신종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볼리비아에서 다른 나라를 따돌리고 최초로 리튬광 개발을 위한 MOU를 맺었다. 볼리비아는 형제국이나 다름 없는 브라질과도 우리보다 1주일 뒤에야 MOU를 교환했을 정도다.

▶김성훈 한국석유공사 부사장=브라질 인근 심해에서 유전이 최근 많이 발견됐다. 이를 다 개발하려면 심해시추선 240척이 필요하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시추선 70%를 우리 조선업체들이 공급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만든 시추선을 제공할 테니 광구를 개발하게 해달라는 제안을 했다.

▶구 사장=‘신의’도 강조했다. 남미 국가들은 자원개발 초기 이익만 남기고 떠나버리는 외국 자본 때문에 곤경에 빠지곤 했다. ‘한국도 개발 시대 때 외국기업들이 와서 이익만 남기고 간 경험을 많이 겪었다. 우리는 그런 경험 때문에 그런 짓을 안 하겠다’는 논리로 공감대를 만들었다. 

▶사회=해외 자원개발은 중국이 우리나라를 훨씬 앞질러 가고 있는데.

▶김 사장=올해 우리나라가 중국과 해외 자원회사 인수 경쟁에서 네 번 맞붙어 네 번 다 졌다. 석유공사 한 번, 한국광물자원공사 세 번이다. 패인은 중국의 풍부한 외환보유액이었다. 자금력에서 우리와 게임이 되지 않았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올 2월 호주 로즈베리라는 아연광산을 8000만 달러에 사기로 했는데 갑자기 중국이 최종단계에서 광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 자체를 사 버렸다. 무려 12억 달러를 한 번에 써 버린 것이다.

▶김 부사장=우리는 세계 7위 원유 소비국이다. 수입은 5위다. 그런데 석유공사는 지난해 기업 순위 95위였다. 유가가 쌀 때 우리는 값싼 원유만 쓰는 데 급급했고, 기술개발과 위험지역 투자를 게을리 했다. 그래서 자주개발률이 낮은 것이다.

▶구 사장=유전 개발을 해도 현재는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매장량의 60% 정도밖에 끌어올릴 수 없다. 나머지까지 뽑아 올릴 수 있는 기술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정부의 지원 아래 공동 개발해 보면 좋겠다. 또 중국을 너무 경쟁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SK에너지는 중국석유화공(SINOPEC)이 가장 필요로 하는 아스팔트 기술을 지원하면서 적도기니의 광구 지분을 공유하고 있다. 중국을 너무 배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김 부사장=자원확보전이 치열한 한·중·일 3개국이 굳이 경쟁을 치열하게 해 인수대상 기업의 값만 올려줄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을 내부적으로 내고 있다. 3국이 공동으로 인수에 참여하는 것도 전략일 수 있다.

▶강남훈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원전 정책관=공기업들은 대형화하는 게 시급하다. 민간기업의 자원개발 리스크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같이 참여하는 1조원 정도의 펀드를 올해 시험적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사회=이번에 정치인들이 자원외교에 참여하는 본보기가 된 것 같다.

▶강 정책관=그간은 자원외교 성과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성과를 분석해 앞으로 기업과 정·관계가 협력해 자원외교를 펼치는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데 모두 공감했다.

▶구 사장=SK에너지는 27년간 축적된 자원개발 경험이 있지만 국제 메이저 회사에 비해 투자비가 턱없이 적다. 1년에 5억 달러 정도다. 그러나 미국 엑손모빌의 경우 자원개발에만 1년에 300억 달러를 쓴다. SK에너지는 국내 최대의 자원개발 민간기업인데도 투자 차이가 너무 난다. 국가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주개발률(에너지 자립도 측정하는 지표)이 낮다. 지난해 말로 석유 5.8%, 광물 23%다. 지금까지는 자원확보를 위한 전략을 개별 회사별로 짰다. 앞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자원개발에 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어느 지역에 매장량이 얼마나 되고, 어떤 개발을 해야 하는지 기업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강 정책관=우리 정부도 현재 자원개발을 최우선순위로 하고 있다. 석유·가스 자주개발률만 보면 노무현 정부 때 5년간 3%에서 4.2%로 높인 데 반해 이번 정부 들어서는 1년 반 만에 6.2%까지 끌어올렸다. 2012년쯤 되면 석유가스는 18%까지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6대 전략 광물(유연탄·우라늄·철·구리·아연·희토류) 16%에서 32%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개발자금도 지난 20년간 총 7000억원 정도 썼는데, 석유공사만 해도 올해까지 2년간 1조5000억원 정도를 투자한다.

정리=문병주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좌담회 참석자>

▶구자영 (61) SK에너지 사장
▶김신종 (59)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김성훈 (54) 한국석유공사 부사장
▶강남훈 (48)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원전 정책관
▶사회= 김시래 산업경제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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