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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기금 딴 데로 술술 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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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시 성동구는 재활용사업 활성화에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200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7억7000여만원의 '재활용품 판매대금 관리기금'을 조성한 뒤 이 중 2억5000여만원을 관내 청소미화원들의 금강산 관광에 사용했다. 또 지역 식품업계에 지원해야 할 '식품진흥기금'6억원을 식품사업체도 아닌 A제조업체에 시중금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이자(연 3%)를 적용, 특혜 지원했다.

성동구뿐이 아니다. 감사원이 3~4월 전국 250개 지방자치단체의 2253개 지방기금을 대상으로 운영 실태를 파악한 결과 상당수 지방기금이 당초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는 등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자체들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조성.운영 중인 지방기금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지방기금 수와 규모는 각각 2253개에 11조2400억여원으로 94년 말에 비해 기금 수는 3.2배로, 기금 규모는 5.1배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기금관리 기본법'에 의해 엄격한 통제를 받는 정부기금들과 달리 지방기금은 지자체법의 조성 근거 외에는 별도의 규제 법규가 없어 지자체들의 '쌈짓돈'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불필요한 기금 만들어 중복 지원"=지자체 법은 지자체의 일반회계로 달성하기 어려운 사업에 한해 기금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충남도는 이미 일반회계에서 사업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여성.문화.청소년.농어촌.복지지원 사업에 2001년 이후 별도의 기금을 만들어 16억여원을 집행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서울시 등 5개 지자체가 2001년 이후 이처럼 별도기금을 만들어 중복지원한 기금 재원이 229억여원에 이른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방기금은 평균 50% 이상이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으로 조성되기 때문에 해당 금액만큼 국민 세금이 중복 지원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 "선심성으로 펑펑"=경기도와 도내 10개 시.군은 200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6차례에 걸쳐 운영기금을 털어 지역 민간단체 직원 3752명에게 6억7000만원의 해외여행 경비를 지원했다. 또 제주도도 도민들의 여행 경비 명목으로 16차례에 걸쳐 2억8000여만원을 운영기금 등에서 끌어다 쓴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2001년 이후 전국 250개 지자체가 이렇게 각종 기금에서 부당하게 지원한 사회단체 지원금이 564억3000여만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 "기금 통폐합하라"=지방기금이 이처럼 방만하게 운영되는 가장 큰 원인은 기금 운영을 통제하는 관계법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행자부 장관에게 기금의 운영을 평가.감독할 수 있는 '지방기금 관리기본법(가칭)'을 만들어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행자부는 지방기금 중 지자체의 일반회계 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기금을 단계적으로 통폐합하라고 통보했다. 지방기금을 부당한 목적에 지원한 성동구 환경위생과 직원 등 관련 공무원 5명에 대해서는 징계를 내리라고 해당 지자체에 요구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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