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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코드] 7. 만물은 돌고 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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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에페소스 도시 전경. 고대 세계에서 가로등을 가졌던 유일한 도로였던 에페소스의 중심가. 이 길을 따라 온갖 고급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이 거리에서 쇼핑한 것으로 유명하다. 에페소스=안성식 기자

고대 도시 유적지 가운데 에페소스만큼 깊은 인상을 주는 곳은 흔치 않다. 도시 전체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에페소스는 폼페이와 함께 고대 세계의 도시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대한 박물관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로등을 밝힌 도시,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와 쇼핑한 도시,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한 도시…에페소스에 대한 수식어는 끊임없다.

하지만 에페소스가 후대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 사도 바울의 편지 때문일 것이다. 신약 성경의 에페소서는 바로 이곳에 있는 초기 그리스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사도 바울은 이 사치와 환락의 도시에 기원후 53년에 도착, 3년간 머물면서 전도에 힘쓰는 한편 고대 3대 도서관 가운데 하나인 켈소스의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에페소스는 또한 사도 요한이 활동한 곳으로 유명하다. 사도 요한은 예수가 세상을 떠난 뒤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으로 와서 전도에 힘썼다. 에페소스에서 7㎞ 떨어진 산속에는 성모 마리아가 영면한 집이 있어 해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에페소스와 이곳의 바다 건너편 파트모스 섬에서 사도 요한은 복음을 저술했다. 그 복음의 시작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이때 '말씀'이란 낱말은 그리스어의 '로고스(logos)'를 번역한 것이다. 이 로고스란 낱말의 의미는 실로 넓고 깊어서 문맥에 따라 '말씀' '논리' '진리' '원리' 등을 뜻한다. 따라서 이 낱말의 정확한 의미를 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논리적인 말' 정도의 뜻을 가졌던 이 낱말에 일찍이 이렇게 복잡한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이곳 에페소스 출신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기원전 540~480년)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원래 왕족 출신으로 높은 공직을 상속 받았다. 그러나 민주정치가 종종 무정부상태의 무질서로 치닫는 데에 실망하여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 주고 자신은 은둔하여 공부와 사색으로 여생을 마쳤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성격이 엄격하고 고집스러울 뿐더러 친절하지도 않았기에 '어두운 철학자'로 알려졌다. 그는 또 자신의 생각을 짧은 경구로 표현하기를 즐겼다.

그는 철학적 지혜로 현실 정치를 바로잡으려 한 최초의 철학자로서 무정부주의와 중우(衆愚)정치를 가장 혐오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정치철학보다는 '모든 것은 흘러간다'라는 경구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말로 자연 속에 궁극적이고 영원한 실체가 있다는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을 부정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모든 것은 계속 변한다. 오직 변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다.

그는 또 "아무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강물이 계속 흘러 새로운 물이 내려올 뿐더러 사람들 자신도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강이 오늘의 강이 아닌 것처럼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의 강이나 '나'가 어제의 강이나 '나'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변화가 결코 제멋대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에는 변하지 않는 원리가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원리를 '로고스'라 불렀다.

세계는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전쟁과 평화, 배부름과 굶주림과 같은 무한하며 다양한 대립짝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대립짝들의 관계는 활대와 활줄과 같다. 활대나 활줄 모두 그 하나하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활은 활대와 활줄이 어우러져 팽팽히 당겨지고 풀리면서 화살을 멀리 쏘아 보낼 때만 비로소 그 가치가 있다. 이와 같이 팽팽해졌다 풀리고 풀렸다가 다시 팽팽해지는 반복이 바로 변화다.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변화란 시간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기보다는 대화적인[dialectic], 즉 상호작용적인 변화다.

변화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원리인 로고스에 따라 반복된다. 이는 마치 영원히 꺼지지 않는 신성한 불꽃이 바람과 연료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과 비슷하다. 불꽃의 모양이 아무리 다양하고 변화무쌍해도 불꽃이 사위고 타오르는 원리, 즉 로고스는 변함이 없다.

로고스를 알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감각이나 주관적 판단에 기울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감각이 느끼는 느낌이나 인상은 일시적이고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불꽃을 아무리 관찰해도 불꽃의 원리를 알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감각의 약점은 세상을 정지된 것, 고정된 현상으로 파악할 뿐 그 뒤에 숨어 있는 생성과 소멸의 역동적 리듬을 보지 못한다.

로고스는 직감과 직관으로만 파악 가능하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모든 것을 배우려고 드는 피타고라스를 비난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해라클레이토스는 많은 지식을 가지면 우리의 영혼이 변화 속에 숨어 있는 역동적 리듬을 파악하는 데 지장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물질에 대한 연구를 벗어나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인 로고스에 대한 탐구를 시작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은 외부 세계에서부터 내부 세계로 향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인류는 자연에 대해 신화적 신비주의를 벗어나 이성에 의한 합리적 설명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사도 요한이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있었다"라고 말한 까닭은 이렇게 멀리 헤라클레이토스에까지 닿아 있다.

에페소스 극장 위에서 지금은 풀만 우거진 옛 항구 자리를 본다. 바다는 이미 5㎞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바라보던 강물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강은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흐른다"는 로고스만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에페소스 = 글 유재원 (외국어대)교수
사진 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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