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 보드리야르 作 '소비의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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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수백만원, 수천만원씩 하는 옷들이 로비에 이용됐다는 최근의 보도는 현대사회의 소비가 의미하는 바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몇번 입지도 않으면서 고가의 옷을 사 입고, 또 그것을 선물함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많은 사람들은 누가 어떤 옷을 선물로 주고 받았는가에 관심을 쏟는 것일까. 한마디로 현대사회에선 소비가 욕구충족이라는 물질적 기능보다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가 쓴 '소비의 사회' 는 이 점에서 소비의 성격을 가장 치밀하게 분석한 고전적인 책이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가 노동과 생산에 의해 성격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 양식에서 그 특징이 드러난다고 보고 있다.

소비는 인간과 사물 사이의 욕구뿐 아니라 인간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생산과정에서의 위치가 아니라 소비에 의해 계급이 구분된다고 보는 시각이다.

계급간의 차이를 대신해 새로운 사회적 위계질서를 만들어 내면서 욕망을 지속적으로 창출한다는 것이다.

바로 옷 로비 사건을 보면서 많은 서민들이 분노하는 데는 소비를 통해 대중과 차별화하려는 상층계급에 대한 저항이 숨어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우선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기본단위가 '생산' 인가 '소비' 인가 하는 원칙적 논제를 출제해볼 수 있다.

전통적 정치경제학의 입장에선 생산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나 보드리야르의 견해를 받아들여 '소비' 를 주장할 수도 있다.

또 소비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설명한 이 책의 글을 준 뒤 현대사회에 적용해보라는 설명형 논제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행위자의 복합적 게임' 으로 설명한 대목을 주고 미래의 소비행위 모델로서 적합성 여부를 물을 수 있다.

어쨌든 소비의 이데올로기적 기능 등에 대한 변화를 추적한 보드리야르의 설명은 흥미롭다.

50, 60년대에는 텔레비전.냉장고.세탁기 등을 소유하면서 어떤 사회적 지위나 계층에 도달하려는 열망이 있었다.

사회적 부가 충분히 축적된 70, 80년대의 경우 집단적 소비행태를 거부하고 절대적 자유와 환상을 소비행위에서 현실화하게 된다.

이에 맞춰 마케팅전략도 과도한 차별화전략을 사용하고 새로운 상표모델을 양산한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컴퓨터통신의 보급으로 소비는 단순히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행위자들의 복합적 게임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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