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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칼럼] 교수들 '분노의 시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엄혹한 군부정권 시절에도 꿈쩍하지 않던 교수들이 4.19 이후 처음으로 거리에 나섰다.

교육부가 추진 중인 '두뇌한국 (BK) 21사업' 에 반대해 전국 국.공립대 교수 1천명이 지난 15일 부산에서 시위를 한데 이어 서울 소재 대학의 교수들도 시위를 준비 중이다.

'두뇌한국21' 의 목표는 간단하다.

매년 2천억원씩 7년간 지원해 미국의 예일이나 프린스턴같은 세계적 대학을 만들어 많은 돈을 들여 외국에 유학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교수들이 거리로 나선 것일까. 문제는 엄청난 돈이 특정 대학에 편중지원되기 때문이다.

주로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인문학.한국학에도 조금 지원되는 이 돈의 절반이 서울대에 집중될 계획이다.

이런 계획은 서울대가 그나마 국제적 수준에 접근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타대학 교수들 대부분 그런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특히 서울대가 외국학문 수입상 역할을 하면서 대학을 서열화해 지금의 부정적 학문풍토를 조성해온 주범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마당에 이번 사업이 서울대에 대한 종속 심화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결국 자신들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고 보고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연구지원비 배분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본질은 대학개혁을 '지원' 이라는 당근으로 추진하는 방식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세계화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국제대학원을 설립하면서 엄청난 돈을 뿌렸으나 그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번 계획도 그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심지어 서울대 내에서조차 '두뇌한국21' 이 계획대로 연구수준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만약 이번 계획이 아무런 성과가 없을 때 아무도 그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때 이 사업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할지 궁금하다.

김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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