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너무 빨랐던 'NLL협의'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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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방한계선 (NLL)에 대한 정부내 상반된 인식이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홍순영 (洪淳瑛) 외교통상장관이 NLL의 대북협의 용의를 밝힌 반면 조성태 (趙成台) 국방장관은 NLL사수 (死守) 를 밝혔다.

장소만 달랐지 같은 날 정부 입장으로 나온 서로 다른 말이었다.

국민은 NLL에 대해 이처럼 엇갈린 두 장관의 말 중 어느 장관 말이 정부의 입장인지 어리둥절해지는 것이다.

洪장관은 외신기자와의 회견에서 베이징 (北京) 남북차관급회담에서 NLL이 협상대상이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어떤 포럼이든 평화적인 대화를 통한) 협의에 대해서는 개방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고 답변했다.

그의 말은 정부가 NLL에 대한 양보안을 시사한 것이나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즉각 야기하는 등 정치권과 국민의 논란을 야기했다.

그가 서해교전이후 조성된 긴장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다소 사려 깊지 못하게 발언한 것으로도 볼 수는 있다.

북한측이 이를 제기할 경우 남북간에 협의키로 된 남북기본합의서 조항에 따라 기본합의서 이행차원에서 거론될 수 있다는 것이 洪장관의 진의라고 외교부측이 해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洪장관의 말은 자가당착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우선 洪장관은 미 국무부 대변인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공해' 라고 발언한 데 대해 같은 날 국회에서 "NLL은 우리 영해이고 우리 관할수역임을 미국에 지적, 바로잡을 것을 요구했다" 고 말했다.

공해가 아닌 우리 영해라고 미국엔 항의해 놓고 북한엔 그 관할권을 놓고 협의할 수 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가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NLL 무력화 (無力化) 라는 북한의 기도는 성과를 달성한 셈이 되는 게 아닌가.

둘째, 기본합의서의 이행차원에서 그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외교부측의 해명도 석연치는 못하다.

이번 차관급회담이 기본합의서의 이행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이 아닌데도 이를 전제로 말했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북측이 베이징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는 무조건 '협의' 에 임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또 그럴 경우 북측에 양보하는 협의가 될 수밖에 없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언급엔 고도로 계산된 정부의 어떤 입장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이에 펄쩍 뛰고 있다.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전제로 이 문제가 협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이에 불응하는 상황에서, 더구나 교전까지 치른 긴장상황에서 洪장관 발언과 같은 섣부른 논의는 금물임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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