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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아진 인적에 잠깬 '태초의 동네'-동강 문희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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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강건너 사공을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고 소울음뿐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 문희마을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51㎞ 동강 줄기 한가운데 있는 강마을. 대여섯가구가 모여 산채뜯고, 강고기 잡아 그럭저럭 꾸려오던 마을. 요즘 문희마을에는 도회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천지개벽했다.

동강 트레킹이니 동강 래프팅이니 동강 자연탐사니 하면서 몰려온 사람들이 주말이면 수천명에 이른다. 그러니 문희마을 사람들은 이들 상대로 밥짓고, 방 장사하기 바쁘다. 문희마을 이학균.정무룡씨. 지난 주말 5백여명이 몰려 이들을 잠재우고 쌀 한가마니 밥짓느라 근력이 다 빠졌다고 투덜 (?) 거린다.

문희마을은 아름답다. 새벽녘 강변을 따라 걸으면 산골마을이 강안개에 자욱히 젖어있다. 문희마을은 동강 곁에 산골처녀처럼 수줍은듯 숨어있다. 동강은 문희마을을 끼고 마치 개혓바닥 낼름거리는듯 에돌아 흐른다.

낙동강 하회마을처럼 동강의 하회마을들이 전부 문희마을을 끼고 있다. 소사마을.절매마을.소동마을등. 동강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문희마을을 거쳐야 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질 않는다.

영화배우 이름을 갖고 있는 마을. 영화배우처럼 아름다운 마을. 무슨 특별한 내력이 있을 듯해 나이깨나 든 이들에게 묻고물었지만 대답은 신통찮다.

"유래는 뭔 유래. 아, 아주 옛날부터 그렇게 불러왔어. " 게중 겨우 얘기같은 얘기를 들었다. 문희는 영화배우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단지 문희마을 뒤켠에는 해발 7백m되는 칠목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칠목령을 넘으면 제장마을. 옛날 제장마을에 수캐가 있었다. 하지만 문희마을에는 암캐뿐이었다. 발정난 수캐가 밤이면 암캐 찾아 칠목령을 숱하게 넘나들었다. 아침이면 수캐의 털에 옻이 많이 묻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칠목령에 옻나무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수캐를 통해 알았다. 그후 제장마을은 옻칠로 유명해졌다. 지금은 옻이 생산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품질이 아주 뛰어났었다. 아무튼 옛날 그 암캐 이름이 문희였다는 말이 있다.

말도 많은 동강. 없어진다, 남는다는 말에 앞서 동강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동강은 몸살이다. 강변을 걷다보면 버려진 음식쓰레기가 흉물스럽다.

깨끗하기만 하던 바위들도 이끼가 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드니 이틈에 돈좀 만져보려고 외지사람.동네사람들이 섞여 인심도 예전같지 않다.

무심한 것은 동강뿐이다. 아름답기에 슬픈 동강은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수리~ 납운치~ 점재~ 소동~ 고성~ 소사~ 연포~ 절매~ 문희~ 마하리~ 진탄~ 문산~ 어라연~ 만지~ 거운리등 산골 마을들을 돌고돌아 남한강으로 간다.

문희마을 가는 길은 동강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이다. 칠목령에 오르면 발길 양쪽이 동강이다. 동강을 이렇게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은 이곳뿐일 것이다. 문희마을사람들과 문희마을을 찾아온 사람들. 이들은 모두 동강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산골마을에 몰려든 차와 사람들의 수에 놀란다.

뱃사공을 부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저 소울음소리만 들리는 산골마을이 이제는 보기 힘든 세상이 된것 같다.

이순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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