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희 리스트' 윤곽 드러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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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원철희 (元喆喜) 전 농협회장의 '사라진 비자금 6억원' 이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元전회장이 구속 직전 측근에게 "비자금을 정치인들에게 줬고 이중에는 여권 중진 K의원과 장관 K씨가 있다" 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또 "나는 희생양이다. 알 만한 사람들에게 돈을 줬다" 고 말했다 한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때는 그런 내용을 진술받지 못했다" 고 밝혔다.물론 元전회장이 검찰에선 그런 진술을 안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元전회장은 9일 첫공판에서 이를 암시하는 진술을 했다.

그는 검찰이 "농협회장 시절 조성한 비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느냐" 고 다그치자 "큰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 조직에 도움되는 공공목적에 사용했다" 고 답변했다.

元전회장은 또 "비자금 중 의원 후원회비는 영수증 처리가 안돼 변칙처리했다" 고 말했다.

개인용도가 아닌 농협이란 공조직을 위한 로비에 썼다는 주장이다.

재판부와 검찰이 비자금 중 어느 정도의 액수가 누구에게 건네졌는지, 그리고 후원회비뿐이었는지에 대해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아 元전회장의 진술은 거기서 그쳤다.

元전회장에 대한 검찰수사는 애초부터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많았다.

검찰은 "元전회장으로부터 '정치권 등에 로비자금을 썼다' 는 진술을 받아냈지만 액수가 소액이고 95년 농협비리 수사때도 정치권에 전달된 자금을 수사하지 않아 이번에도 넘어갔다" 고 발표했다.

대신 검찰은 98년 강원도지사 선거때 출마한 한호선 (韓灝鮮) 전 농협회장에게 전달된 1천만원에 대해서만 내역을 밝혔다.

나머지 수억원대의 비자금에 대해선 "개인적 용도나 교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금으로 임의 사용했다" 며 사용처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元전회장은 측근들에게 "정치인들에게 한꺼번에 거액을 주진 않았지만 전달된 액수를 합치면 적지 않다" 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검찰이 비자금 내역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수사를 소홀히 했거나 축소수사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검찰의 석연치 않은 태도는 또 있다.

元전회장은 법정에서 농협이 96년 부실기업이던 서주산업에 지급보증을 한 데 대해 "당시 청와대 윤진식 (尹鎭植) 경제비서관이 직접 전화했고 재정경제원도 대출담당 부회장에게 부탁해 거절하기 어려웠다" 고 진술했다.

검찰은 그러나 수사결과 발표때 이 부분을 빼놨었다.

검찰은 "尹비서관이 단순히 도와주라고 부탁했을 뿐 특별한 금품거래가 없어 넘어갔다" 고 말하고 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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