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리더] 美 재무부차관 티모시 가이스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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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까다롭고 성질 급하기로 소문난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장관 내정자 (현재 부장관) 앞에서 거리낌없이 '노 (NO)' 라고 말할 수 있는 겁없는 젊은이. "

다음달 초 현직에서 물러나는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이 지난해 말 국제담당 차관으로 승진한 티모시 가이스너 (37) 의 승진 축하연에서 그를 치켜세우며 한 말이다.

그를 처음 보면 동안 (童顔) 의 천진스런 표정 때문에 만만한 애숭이로 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와 업무상 접촉해본 사람들은 저마다 가이스너가 아직 40세도 안된 젊은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노련한 정책 수완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가이스너는 7월 서머스가 장관에 취임하면 사실상 재무부의 2인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서열 2위인 부장관 자리는 현 국무부차관 스튜어트 아이젠슈타트에게 돌아가지만 서머스가 맡아왔던 국제관계 업무는 고스란히 가이스너에게 넘어간다.

환율정책이라든가, 서방 선진7개국 (G7) 간의 정책조율과 같은 국제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중책을 아이젠슈타트 대신 가이스너에게 맡긴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능력을 높이 샀다는 얘기다.

미 재무부는 단순히 한 나라의 금융정책만을 주관하는 부서가 아니다.

전세계 금융시장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곳이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금융시장을 위기에서 건져낸 것은 루빈 장관과 서머스 부장관을 필두로 한 재무부의 국제금융팀이었다.

여기서 가이스너는 한국.태국.브라질 등 외환위기에 빠진 나라들을 지원하기 위해 1천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동원하는 데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88년 재무부에 발을 들여놓은 후 줄곧 국제 금융분야에서 정책입안 및 협상전문가로 활약해왔다.

루빈 취임 후 특히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주일 (駐日) 재무관.국제통화기금 (IMF) 담당 부차관보.국제담당 수석 부차관보.국제담당 차관보로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그의 출세를 질시하는 시각도 없지는 않지만 그가 명실상부한 국제금융계의 차세대 선두주자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가이스너가 서머스 같은 학문적 배경이나 루빈 같은 금융계 인맥이 없으면서도 '인재의 보고' 라는 미 재무부에서 두각을 나타낸 데는 그의 타고난 성실성과 예리한 판단력이 큰 몫을 했다.

그는 요즘도 딱히 출.퇴근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일에 파묻혀 지낸다.

가이스너는 현재 정치.경제분야를 통틀어 미 정부 내에서 일본정부의 의중을 가장 정확히 읽어내는 일본통으로 꼽힌다.

95년엔 '미스터 엔' 으로 유명한 사카키바라 일본 대장성 차관과 담판을 벌여 미.일 금융서비스 협약을 타결짓기도 했다.

다트머스대를 졸업하고 존스 홉킨스대의 국제관계대학원 (SAIS)에서 국제경제 및 동아시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재무부에 들어오기 전까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세운 국제자문회사에서 아시아담당 연구원으로 일했다.

워싱턴 = 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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