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진주성에 6만 의총 조성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박정희 (朴正熙) 전 대통령의 근대화에 대한 치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기념관 건립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분단극복을 위한 민족화해와 동서화합을 갈망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역사적인 화해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지난날 대립관계에 있었던 두 정치지도자간의 이 역사적 화해야말로 국민 대화합을 위해 환영할 일로 무엇보다 동서화합에 좋은 시발점이 되리라고 본다.

나는 여기서 한가지 역사적인 사업을 제안하고 싶다.

두 지도자가 하나같이 가장 존경하고 추앙했던 충무공 이순신 (李舜臣) 장군이 나라를 구했던 임진왜란 때의 역사유적과 관련한 일이다.

朴전대통령은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받들고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아산 현충사를 건립했고 같은 시대 전적지인 남원과 금산에도 역사유적 보존사업을 했다.

朴전대통령은 왜군 5만6천명과 치열한 전투 끝에 장렬히 전사한 1만여 의사들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 79년 임진왜란 격전지인 남원성에 만인의총 (萬人義塚) 을 조성, 성역화 했다.

또 같은 시대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7백 의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난 76년에는 금산성에 칠백의총 (七百義塚) 을 조성, 성역화해 그 뜻을 전하고 있다.

朴전대통령의 이같은 역사유적사업에 대해 金대통령이 화답할 일이 있다.

그것은 임진왜란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장 진주성에 육만의총 (六萬義塚) 을 조성하고 성역화하는 일이다.

오늘의 우리가 다시 새길 진주성의 역사적 의미는 각별하다.

첫째, 진주성 1차전은 대승리였으나 2차 전투는 불과 7천여 군사로 10만 왜군과 9일동안 대혈전을 벌여 끝까지 싸우다 성안의 6만여 민.관.군이 처참하게 도륙을 당한 통한의 역사현장이라는 점이다.

둘째, 진주성은 민.관.군이 하나가 되고 영.호남 의병이 하나 돼 목숨을 바쳐 싸운 총력전이었다는데 의미가 크다.

셋째, 2차 전투의 우리 군사의 주력이 호남 전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들이었다는 점이다.

진주성 삼장사로 일컬어지고 있는 창의사 김천일 (나주) , 전라좌의병장 최경회 (화순) , 복수의병장 고종후 (광주) 는 호남의병들의 선봉장이었다.

임진왜란중 최대의 격전지요,가장 많은 희생자들의 슬픈 원혼이 서린 진주성에 지금껏 합동무덤으로서 의총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진주성에 당시 의병들이 일어난 영.호남 각지의 흙과 잔디, 나무를 한데 모아 육만의총을 조성하는 일은 金대통령의 화해선언 의지를 실현시키는 큰 발판이 될 것이다.

이 일은 선조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큰 화합정신을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

선인들의 애국혼을 받드는 충절의 성으로 진주성을 보존하고 가꾸는 일은 이 시대 우리의 몫이다.

진주성에 새겨진 이 한 구절이 숙연하다.

'남강물은 의사열녀의 붉은 피로 물들고, 천만년 흘러도 다시 씻지 못할 피 어린 원한에 목메어 울며 울며 오늘까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

꽃다운 20세에 촉석루 의암에서 몸을 던져 왜장 게야무라 로쿠쓰게를 남강에 수장시킴으로써 나라와 남편의 원수를 갚은 주논개 (朱論介) 부인의 붉은 충절이 오늘도 진주성과 남강을 지키고 있다.

김기옥 사단법인 법시사 이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