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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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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마오쩌둥(毛澤東)은 사회주의 건설을 서둘렀다. 1963년 마오는 강철과 에너지 생산에서 영국을 7년 안에, 미국을 15년 안에 따라잡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58년 시작된 대약진운동이 2000만명을 넘는 아사자를 낳았지만 돌진 속도를 더 내자고 다그친 것이다. 남의 나라에서는 1만년 단위로 역사가 전개될지라도 중국에서는 한시간, 한나절 단위로 급박하게 역사가 전개되어야 한다고 조급해 했다. 마오는 조급한 마음에 사회 개조를 위한 문화대혁명에 나섰지만, 결과는 피폐해진 중국이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대조적인 입장이었다. 덩은 사회주의 현대화의 완성은 최소한 100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초급단계(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놓여 있고 이 상태가 100년 동안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다. 조급한 마오에 맞선 덩의 주장을 자오쯔양(趙紫陽)은 '용기'있는 이론이라고 평가했다. 덩은 실용주의 노선인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주장하고 문화혁명의 급진노선을 비판하다가 두차례나 실각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78년 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덩은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하면서 79년 당시의 1인당 국민총생산 250달러를 20세기 말에 가서 800달러에 이르게 한다고 '느긋하게'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98년에 760달러에 달했고, 중국은 경제대국의 꿈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고(故) 민두기 교수는 20세기 들어 중국의 역사적 목표를 장기적 안목에서 비교적 '느긋하게' 설정한 것은 덩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 처음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시간과의 경쟁', 연세대 출판부). 쑨원(孫文)과 마오 등 20세기 중국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조급했고, 균형잡히지 않은 조급증은 늘 실패하고 재난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요즘 우리 사회도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정리와 수도 이전 등을 통해 사회 주류세력을 단숨에 교체하겠다고 나서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조급증에 휩싸인 무리한 사회 개조 운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재난만 불러오고 큰 후유증을 남긴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내일(22일)은 덩이 탄생한 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시대적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유장(悠長)했던 덩의 행보를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이세정 논설위원